일식은 태양이 달에 가려지는 현상이다. 태양-달-지구 순으로 정확하게 배열될 때 관측할 수 있다. 지구상 모든 곳에서 같은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위도나 경도에 따라 태양이 완전히 사라지는 개기일식, 일부분만 가려지는 부분일식으로 다르게 발생한다. 그 순간 밤인 곳도 있다. 21일 오전 10시15분(현지시간) 미국 태평양 연안 오리건주에서 개기일식이 시작됐을 때 한국은 22일 오전 2시15분이었다.
태양은 모든 생물의 활동에 가장 중요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일식이 과거 부정적인 현상으로 여겨졌던 건 그래서다. 일식의 원인을 과학으로 검증한 지금까지 이 현상을 미신이나 점성술로 해석하는 사람은 지구촌 곳곳에 여전히 존재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식의 전파 속도가 빨라져 그 숫자가 감소하고 있을 뿐이다.
1. 일식으로 전쟁 막은 고대 그리스 수학자
고대 그리스는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의 요람이다. 천문학도 그 시대에 시작됐다. 이 학문은 정치 농사 상업에 활용됐다. 행성의 반복되는 움직임을 파악해 ‘예언’으로 가장하고 정치에 활용한 천문학자도 있었다. 독점한 지식을 권력에 악용한 셈이지만, 부정적인 사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 수학자 탈레스는 천문학에 정통했다. 당시 사람들은 일식을 신의 분노로 여겼지만 탈레스는 달랐다. 과거 문헌을 조사해 천체 활동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고대 그리스사는 기원전 585년 5월 28일 개기일식을 예측해 소아시아(현 터키) 리디아와 전쟁을 막은 탈레스의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신이 분노해 세상을 암흑으로 만들 것”이라고 겁을 줬고, 실제로 개기일식이 나타나면서 전쟁은 끝났다.
2. 일식으로 일반상대성이론 증명한 영국 천문학자
유태계 독일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태양처럼 무거운 질량의 천체가 중력으로 빛을 휘게 만들고, 그 결과 공간이 왜곡된다는 이론이다. 우주에서 시공간을 왜곡하는 구멍이란 개념의 ‘블랙홀’은 이 이론으로 설명되고 있다. 지구상에서 검증이 어려운 이 이론은 여러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2014년작 ‘인터스텔라’처럼 공상과학(SF)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영국 천문학자 아서 애딩턴은 1919년 5월 29일 아프리카 프린시페섬에서 개기일식을 촬영해 일반상대성이론을 증명했다. 애딩턴은 한밤중, 그리고 개기일식이 발생했을 때 각각 사진을 촬영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두 사진에서 별의 위치는 각각 다르게 나타났다. 사진 촬영에 적합하지 않은 기상 탓에 검증이 가능한 사진은 많지 않았지만, 중력으로 인한 빛의 굴절을 처음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3. 미신을 걱정한 중국, 테러를 걱정한 인도
우리나라에서 21세기 들어 관측된 최대 규모의 일식은 2009년 7월 22일 태양의 80%를 가렸던 부분일식이다. 당시 인도와 중국 남부에서는 태양이 완전히 가려진 개기일식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200년 만에 나타난 ‘우주쇼’로 들썩거렸다. 하지만 우주와 기상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중국도 대중 깊숙이 파고든 미신을 걱정했다. 중국 국무원 판공청은 개기일식을 앞두고 각 부처와 지방정부에 통지문을 보내 “불안해질 수 있는 치안과 횡행할 수 있는 미신에 대비하라”고 당부했다.
인도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에서 부정적 징조로 여기는 일식으로 인한 테러를 걱정했다. 뭄바이의 한 점성술사는 카슈미르 지방의 독립을 요구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 또는 무장단체 알 카에다가 일식에 맞춰 정치 지도자 암살을 시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발언은 언론을 타고 확산됐다. 개기일식을 ‘용이 태양을 삼켰다’고 믿는 힌두교의 영향으로 이미 잡혔던 제왕절개 수술 일정이 대거 미뤄지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4. 비행기 띄워 시속 1100㎞로 일식 쫓은 미국
미국은 1918년 6월 8일 워싱턴주에서 플로리다주까지 관측된 뒤 99년 만에 다시 나타난 개기일식을 자국 영토에서 제대로 분석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1일 오전 10시15분(서부시간) 태평양 연안 오리건주에서 시작돼 오후 2시48분(동부시간) 대서양 연안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끝난 이 93분짜리 ‘우주쇼’에 우주선, 비행기, 인공위성을 총동원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선 11대, 비행기 3대, 풍선 관측기 50대 이상을 준비했다. 고공관측기 마틴 B-57 캔버라(WB-57F) 2대는 3분30초 동안 상공에서 고화질 사진을 촬영했다. 초당 확보할 수 있는 사진은 30장. 지상에서 2분30초 안팎인 관측시간을 고작 1분가량 늘리기 위해 이 장비가 동원됐다. 그동안 우주에서는 달 정찰위성이 그림자에 가려진 지구를 촬영했다.
미국국립기상연구소(NCAR)는 정재계 인사들의 전용기로 사용되는 걸프스트림을 투입했다. 시속 1100㎞로 개기일식을 따라갔다. 개기일식이 진행된 속도는 시속 2735㎞. 거의 절반의 속도로 태양을 따라 비행한 셈이다. NCAR는 이 장비를 활용해 지상보다 4분가량 더 긴 시간 동안 개기일식을 관측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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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