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 가능케 한 ‘사법권력 교체’… 文대통령 '15명' 더 임명

입력 2017-08-22 08:58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사진=춘천지방법원 제공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3월 10일. 서울대 교수였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법학자로서 추가로 기쁜 점이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임기가 9월 26일 끝난다. 이미 퇴임한 박한철 헌재 소장과 양 대법원장 후임을 모두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었는데, 이제 그 권한이 새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조 수석이 이 글에서 말한 것은 대법관 14명 중 12명,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이 향후 5년 안에 임기를 마친다는 일정이었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은 우리나라 사법부 기조를 좌우하는 ‘최고 법관’들이다. 2021년까지 그 23명 중 20명이 6년 임기를 마치고 법복을 벗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고 법관 후임자를 20명이나 임명하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었다.

◇ 탄핵에 추가된 문 대통령 ‘사법부 인사’ 7자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아니었다면 이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19대 대통령선거를 정상적으로 2017년 12월에 치렀다면 2018년 1월까지 퇴임하는 대법관 5명과 헌법재판관 2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임자를 임명하게 돼 있었다. 그 중에는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과 양승태 대법원장의 후임자도 포함돼 있다. 두 기관의 수장을 포함해 최고 법관 7명을 임명할 기회를 박 전 대통령은 탄핵으로 날려버렸다.

그 인사권은 고스란히 문재인 대통령 몫이 됐다. 재임 중 임명할 최고 법관 20명 중 5명을 취임 100일 만에 이미 임명 또는 지명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5월 19일 지명), 조재연 박정화 대법관(6월 16일 양승태 대법원장 임명 제청 후 청문회 통과해 임명),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8월 8일 지명),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8월 21일 지명) 등이다.

아직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15명의 인사가 더 남아 있다. 이들의 임기는 6년씩이어서 문 대통령이 갖출 사법부 진용은 강산이 어느 정도 바뀌어야 달라질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교체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어떤 정권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사법권력 교체의 기회를 새 정권에 제공했다.

김명수(58·연수원 15기) 대법원장 후보자 발탁은 파격이었다. 기수를 파괴했고, 관행을 깨뜨렸다. 김 후보자는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채 대법원장으로 ‘직행’했다. 31년간 법관으로 재직하며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문 대통령의 5년 임기와 기존 최고 법관들의 잔여 임기를 따져보면 이 파격적인 인사는 사법권력 교체의 서막일 뿐이다.

◇ 임기 6년… 한 번 바뀌면 오래가는 사법권력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2016년 춘천지법원장 부임 후에도 전국 법원장회의에서 사법개혁을 촉구해온 인물이다. 인선은 청와대 인사·민정라인에서 극비리에 이뤄졌다고 한다. 21일 전격 발표 후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의외라는 평가가 나왔다. 청와대는 김 후보자 지명이 사법개혁을 위한 포석임을 감추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장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13단계나 아래인 김 후보자를 지명한 것부터가 일종의 충격요법이란 의미를 갖는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소식이 알려지자 법조계는 술렁였다. 한 판사는 “정말로 예상하지 못한 인선이다.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가 연수원 15기인데, 우리 법원의 원장보다도 아래 기수”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른 판사는 “2004년 김영란 전 대법관이 만 48세의 나이로 최초 여성 대법관에 임명됐을 때처럼 사법부의 기수·관료 문화에 큰 변화가 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청와대가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한 시각, 김 후보자는 춘천지법 202호 법정에서 재판 중이었다. 그의 지명은 춘천지법뿐 아니라 대법원도 짐작하지 못했다고 한다. 춘천지법의 한 관계자는 “김 법원장은 평소처럼 오후 2시부터 재판에 들어갔다”며 “지명 여부를 전혀 몰랐던 법원 직원들이 전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온 김 법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판 직전에 대략적인 소식을 들었고, 재판 중에 지명돼 아직 가족에게도 연락을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일선 재판 현장에서 지명된 이례적인 상황이라 걱정이 되지만 이것이 더 큰 장점이라 생각하고 청문회에 임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변호사단체는 변화와 개혁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김현 대한변협 회장은 “굉장히 의외”라며 “앞으로 법원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김 후보자를 지명한 것만 보더라도 청와대의 사법개혁 의지가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당장의 관심사는 보수적 판결을 쏟아냈던 ‘양승태 코트(court)’의 색채를 얼마나 벗어낼까 하는 점이다. 김명수 코트는 국정원 대선 개입 혐의로 30일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은 물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등 국정농단 피고인들의 상고심을 심리하게 된다. 대법원 계류 중인 통상임금 소송 등도 다루게 된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