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대법관·재판관' 인선, 아직 15명 남았다… '사법권력 교체'의 서막

입력 2017-08-21 21:14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왼쪽)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사진=뉴시스

김명수(58·연수원 15기) 대법원장 후보자 발탁은 파격이었다. 기수를 파괴했고, 관행을 깨뜨렸다. 김 후보자는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채 대법원장으로 ‘직행’했다. 31년간 법관으로 재직하며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이번 인사는 문재인정부의 사법개혁 의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란 평가가 나왔다. 

‘사법개혁’이란 표현은 적당하지 않다. 보수정권 10년간 결원이 생길 때마다 사법부 주요 자리에는 정권이 낙점하는 인사가 포진했다. 그 인사권을 넘겨받은 문재인 대통령에겐 재임 5년간 무려 20명의 고위 법관을 지명하는 흔치 않은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까지 5명을 지명했다. 사법개혁을 넘어선 사법권력의 교체, 그 서막이 올랐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3월 10일. 서울대 교수였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법학자로서 추가로 기쁜 점이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임기가 9월 26일 끝난다. 이미 퇴임한 박한철 헌재 소장과 양 대법원장 후임을 모두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었는데, 이제 그 권한이 새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그가 이 글에서 말한 것은 대법관 14명 중 12명,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이 향후 5년 안에 임기를 마치게 된다는 일정이었다. 그 후임자를 모두 문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 터였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해 최고 법관 20명에게 임명장을 주는 기회를 이 정부는 얻었다. 이들의 임기는 6년씩이어서 문 대통령이 갖출 사법부 진용은 강산이 어느 정도 바뀌어야 달라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그 중 5명의 후임을 이미 지명 또는 임명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5월 19일 지명), 조재연 박정화 대법관(6월 16일 양승태 대법원장 임명 제청 후 청문회 통과해 임명), 이유정 헌법재판관(8월 8일 지명), 김명수 대법원장(8월 21일 지명)이다. 아직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15명의 인사가 남아 있다.

◇ 춘천지법원장을 대법원장에… 사법권력 교체의 ‘예고편’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2016년 춘천지법원장 부임 후에도 전국 법원장회의에서 사법개혁을 촉구해온 인물이다. 인선은 청와대 인사·민정라인에서 극비리에 이뤄졌다고 한다. 21일 전격 발표 후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의외라는 평가가 나왔다. 청와대는 김 후보자 지명이 사법개혁을 위한 포석임을 감추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장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13단계나 아래인 김 후보자를 지명한 것부터가 일종의 충격요법이란 의미를 갖는다.

청와대는 앞서 검찰 인사에서도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후임으로 연수원 기수가 5기 아래인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전격 임명했다. 법조계 내부의 암묵적 카르텔을 깨고 비공식적인 규율을 허무는 것에서부터 개혁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21일 김 후보자 인선과 관련해 “모든 인사에는 관행이 있다. 하지만 파격도 있어야 새 정부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양 대법원장 후임으로는 박시환 전 대법관과 전수안 전 대법관이 유력하게 거론됐었다. 그러나 두 사람을 비롯해 물망에 오른 개혁적 인사들이 대부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내부에선 사법개혁을 담당할 대법원장 인선을 적당히 타협할 수 없다는 기류가 강했고, 그 결과가 현직 지법원장 발탁이라는 파격적 카드로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 그리고 18명의 ‘최고 법관’

김 후보자 앞에는 사법부 개혁과 내부 통합이라는 두 마리 토끼가 놓여 있다. 블랙리스트 의혹 컴퓨터 조사 등에 있어서 국제인권법연구회장 출신인 신임 대법원장이 어느 한쪽에 치우친다는 인상을 준다면 내부 통합이 어려워진다. 사법개혁을 이끌 강력한 구심점을 얻기 위해 인사권 등을 강하게 행사한다면 개혁 성향 판사들의 사법 독립 요구와 상충할 수도 있다. 

재경지법의 한 법관은 “대법원장으로서 본인이 발언한 내용들을 지키면서 사법 개혁과 통합을 동시에 이끌어야 하는 책임을 맡게 됐다”고 했다.

보수적 판결을 쏟아냈던 ‘양승태 코트(court)’의 색채를 벗어낼지도 관심사다. 김명수 코트는 국정원 대선 개입 혐의로 30일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은 물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등 국정농단 피고인들의 상고심을 심리하게 된다. 대법원 계류 중인 통상임금 소송 등도 다루게 된다.

문 대통령은 이미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 인사권을 행사했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3명도 지명 또는 임명했다. 아직도 대법관 9명과 헌법재판관 6명이 남아 있다. 이 15명 자리를 맡고 있는 현직 인사들은 모두 문 대통령 임기 중에 법복을 벗게 된다. 그 후임을 문 대통령이 임명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야당에 추천권이 있는 일부를 제외하곤 사법부 인사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 인선 방향은 향후 10년간 사법부의 기조를 좌우하게 된다. 야당이 아직도 임명동의안을 표결해주지 않고 있는 김이수 헌재 소장 후보자, 지명과 동시에 '진보 성향'이란 타이틀이 붙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를 보면 문 대통령의 향후 15명 인선 방향을 가늠키란 그리 어렵지 않다. 사법권력의 교체란 기회는 갖기도 쉽지 않고 포기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 절호의 기회를 문재인정부는 포착했다.

◇ 술렁이는 법조계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소식이 알려지자 법조계는 술렁였다. 한 판사는 “정말로 예상하지 못한 인선이다.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가 연수원 15기인데, 우리 법원의 원장보다도 아래 기수”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른 판사는 “2004년 김영란 전 대법관이 만 48세의 나이로 최초 여성 대법관에 임명됐을 때처럼 사법부의 기수·관료 문화에 큰 변화가 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청와대가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한 시각, 김 후보자는 춘천지법 202호 법정에서 재판 중이었다. 그의 지명은 춘천지법뿐 아니라 대법원도 짐작하지 못했다고 한다. 춘천지법의 한 관계자는 “김 법원장은 평소처럼 오후 2시부터 재판에 들어갔다”며 “지명 여부를 전혀 몰랐던 법원 직원들이 전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온 김 법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판 직전에 대략적인 소식을 들었고, 재판 중에 지명돼 아직 가족에게도 연락을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일선 재판 현장에서 지명된 이례적인 상황이라 걱정이 되지만 이것이 더 큰 장점이라 생각하고 청문회에 임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변호사단체는 변화와 개혁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했다. 김현 대한변협 회장은 “굉장히 의외”라며 “앞으로 법원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김 후보자를 지명한 것만 보더라도 청와대의 사법개혁 의지가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