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반선교법’ 실시한 지 1년, 개신교 선교 적색불 켜져

입력 2017-08-19 11:38 수정 2017-08-20 06:48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알렉산더 네브스키 러시아정교회 성당 모습. 구자창 기자

러시아의 개신교 선교 사역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테러방지법’이 시행된 후 1년이 지나면서 현지 목회자와 선교사들이 마주하는 선교 장벽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지난해 7월 6일 테러방지법(일명 야로보이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기본적으로 개신교 선교 활동을 금지하고 공식 허가를 받은 교회 건물 이외에서의 종교적인 행위를 막는다. 신앙의 자유는 허용하지만 전도할 자유는 금해 ‘반선교법’(Anti-Missionary Law)으로도 불린다.

국민일보는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서울 대치순복음교회(한별 목사)가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나자렛교회에서 진행한 한국·러시아 종교개혁 500주년 연합성회에 동행 취재했다. 18일 현지에서 러시아 현지 목회자와 선교사들을 만나 테러방지법 이후 러시아 선교 현황이 어떤지 들어봤다.

안드레이 하루쉰카(서부 시베리아오순절교회연합 노회장) 목사는 “테러방지법은 사실상 개신교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며 “현재 테러방지법을 위배해 진행 중인 소송이 100건을 넘는데 대부분 개신교인이 대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종교적인 내용이 담긴 책이나 자료, 전도지 등에 교회 이름과 주소를 정확하게 적지 않거나 정부 허가 도장을 받지 않은 게 적발되면 벌금을 내야한다”며 “소비에트 연방 시절 받던 핍박만큼 심한 수준은 아니지만 정부가 교회들이 테러방지법 잘 지키고 있는지 유심히 살피고 있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의 배경에는 러시아정교회(정교회)의 막강한 영향력과 견제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는 2014년 2월 정교회 신자가 급증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센터에 따르면 1991년까지 정교회 신자는 러시아 전체 인구의 31%정도였으나 2008년이 되면서 72%까지 늘었다. 개신교와 카톨릭, 이슬람 등 종교의 인구는 90년대에 급증했으나 2000년대 이후로 큰 변화가 없다.

러시아정교회 신자들이 17일 노보시비르스크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 안에서 기도하고 있다. 구자창 기자

현지 선교사와 목회자들은 정교회의 압력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24년째 사역 중인 김노아(성 바울신학교) 선교사는 “러시아정교회는 개신교를 이단시하며 심하게 배척하고 있다”며 “러시아 정부 공식행사가 있을 때 행정·사법·입법부의 3부 요인과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가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정교회 영향력이 크다”고 전했다. 

하루쉰카 목사는 “테러방지법을 준수해 전도지를 배포했는데도 러시아정교회 신자들이 골탕 먹이기 위해 꼬투리를 잡아서 신고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며 “경찰에서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언론을 통해 관련 내용이 보도되면서 개신교 이미지가 안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쉬마코브 예브게니(반석위에 교회) 목사도 “최근 교회를 짓고 있는데 러시아정교회 신부가 정부기관에 이단이라며 신고해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며 “다행히 큰 문제가 생기진 않았지만 개신교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체감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테러방지법과 관련해 진행 중인 소송 중에 러시아정교회 관련 건은 거의 없다. 노르웨이 매체인 ‘포럼18'의 지난 8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이후로 기록된 186건의 소송에서 개신교는 60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여호와의증인이 41건, 침례교가 28건을 기록했고 나머지 57건은 기독교 이단 분파와 이슬람, 불교였다. 이 중 러시아정교회와 관련된 소송 건수는 단 한 건이었다. 러시아에서 러시아정교회 신자 비율이 70%를 넘는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불균형한 결과다.

테러방지법은 러시아로 파송된 해외 선교사들에게도 적용된 바 있다. 지난 12일 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미국 독립침례교단 선교사인 도널드 오스왈드 목사가 지난해 8월 러시아 오룔(Oryol)에서 테러방지법 위반 명목으로 벌금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오스왈드 목사는 테러방지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벌금 4만 루블(약 80만원)을 내야했다. 그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복음 전도지 두 장을 아파트 복도 게시판에 붙인 혐의로 기소 당했다”는 글을 올려 억울함을 호소했다.

테러방지법은 단체나 조직 명칭, 주소 등을 정확히 알리지 않고 선교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이는 책이나 전도지 같은 출력물, 음향물이나 시각물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불완전하게 적거나 틀린 부분이 있어도 처벌 받는다. 러시아인의 선교행위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선교행위도 처벌한다. 외국인의 경우 테러방지법에 따라 추방당할 수도 있다.

이 법은 또 거주지에서의 모든 선교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신앙에 관련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선 러시아 종교당국에서 지급하는 공문서를 소지해야 한다. 개인이 이 법을 위반할 경우엔 최소 75달러에서 최대 765달러까지 벌금을 물게 된다. 교회나 단체 같은 기관의 경우엔 최대 1만5265달러까지 벌금이 올라갈 수 있다.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E)는 러시아에서의 기독교 선교가 제한 받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USCIRE는 지난 4월 보고서를 발표해 러시아 ‘종교자유침해 특별관심국가’(CPC)로 지정했다. CPC로 지정되면 미국 의회와 정부로부터 외교·무역상 불이익을 받게 된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