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일마다 이희호 여사를 찾았다. 그때마다 자세를 낮춰 얼굴을 마주하고 이 여사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랬고, 서거 8주기인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도 그랬다.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에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거쳐 지금은 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자세를 바꾼 적은 없었다.
8년 전… 문 대통령은 2009년 8월 18일 김 전 대통령의 부고를 들었다. 장례식장이 마련된 서울 연희동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당시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인사로만 소개되고 있었다. 청와대 전 비서실장, 전 민정수석으로 불렸다. 직함이 어떻든 문 대통령은 이 여사와 유족을 만나 두 손을 맞잡고 위로했다. 이 여사는 슬픈 얼굴로 문 대통령과 악수했다.
7년 전… 김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의 ‘거목’이었다. 그를 정치적 스승으로 여긴 정치인들은 지금 거물급으로 성장했고, 정부와 각 당에서 우리나라를 지탱하고 있다. 성과와 평판이 어떻든 모두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했던 2010년 8월 18일 김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때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와 악수하는 모습이다.
6년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오랜 친구면서 정치적 동반자였다.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부인 권양숙 여사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킨 사람은 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2011년 8월 18일 김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때도 권 여사와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사진은 눈물을 닦는 권 여사를 뒤따르는 문 대통령.
5년 전…왼쪽부터 정세균 국회의장,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박준영 국민의당 의원, 문 대통령,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2012년 8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도식에서 이들은 같은 당적을 갖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4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집권 첫 해인 2013년 8월 18일 문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당시 무소속 의원이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와 함께 김 전 대통령 서거 4주기 묘역에 분향했다. 문 대통령과 안 전 대표는 앞서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경쟁했다. 문 대통령이 최종 후보로 나섰지만, 선거는 박 전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다.
3년 전… 문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 기일에만 이 여사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평상시는 물론 정치적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이 여사를 만나 의견을 듣고 선택에 반영했다. 이 여사는 이런 문 대통령을 문전박대한 적이 없었다. 사진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5주기 한 달여 뒤인 2014년 9월 23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환담을 나누는 문 대통령과 이 여사.
2년 전… 문 대통령이 찾아올 때마다 이 여사는 두 손을 맞잡고 환대했다. 이 여사는 90대 고령으로 휠체어에 의존할 때가 많지만, 때로는 일어서서 문 대통령과 악수하며 인사했다. 사진은 김 전 대통령 서거 6주기인 2015년 8월 18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문 대통령이 서울 마포구 동교동 이 여사 자택에 예방한 모습. 김 전 대통령이 생전 이 집에서 이 여사와 거주했다.
1년 전…박 전 대통령 파면 정국의 ‘전운’이 조금씩 몰려들고 있었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언론 보도는 이미 2016년 여름부터 속속 나오고 있었다. ‘친박계’ 핵심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이정현 전 대표와 김재원 의원은 그해 8월 18일 김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했고, 문 대통령과 만나 악수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전국을 촛불로 뒤덮였다. 김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은 문 대통령과 친박계가 웃으면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순간이었다.
오늘… 박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7개월여 앞당겨 치러진 제19대 대선에서 문 대통령은 승리했다. 그렇게 찾아온 김 전 대통령 서거 8주기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고 맞은 첫 기일이다. 문 대통령은 예외 없이 김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했고, 이 여사는 이런 문 대통령에게 평소보다 자세를 낮추고 예우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동안과 다르지 않게 이 여사 앞에서 자세를 낮추고 앉아 악수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