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고장으로 사람이 갇혔는데도 승강기 파손을 걱정한 관리사무소장이 구조를 막아섰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40대 여성은 늦게나마 구조됐지만, 실신한 상태였다. 사고 20분 전에도 같은 엘리베이터가 오작동을 일으켰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A(47)씨를 상대로 업무상과실치상 혐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1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16일 오후 7시쯤 이 아파트 1층에서 B(42·여)씨가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갇혔다. 친정어머니, 8살 아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B씨는 문이 열린 뒤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랐는데, 갑자기 문이 닫히며 작동을 멈췄다.
B씨는 바로 비상벨을 눌러 관리사무소에 구조를 요청했고 아파트 보안요원이 출동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문이 열리지 않아 B씨는 다시 119에 신고했다.
도착한 119 구조대원은 장비를 동원해 엘리베이터 문을 강제로 열 수 있도록 우선 12㎝가량 문을 개방했다. 그러자 관리소장 B씨는 승강기가 파손될 우려가 있다면서 수리기사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라며 구조를 막았다.
답답해진 B씨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30분쯤 뒤 놀라서 현장에 도착한 남편이 “당장 문을 열라”고 소리치고 나서야 119구조대원이 강제로 엘리베이터 문을 개방했다. B씨가 엘리베이터에 갇힌 지 45분이 지난 뒤였다. 문이 열릴 당시 B씨는 이미 실신한 상태였다. 곧바로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두통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경찰에서 "엘리베이터 관리업체 기사가 곧 현장에 도착한다는 보고를 받아 119에 강제 개방을 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한 것이지 구조를 물리적으로 막은 건 아니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부산소방안전본부는 화재 등 긴박한 상황에는 민간 동의 없이 강제 개방 등 구조에 나설 수 있지만 당시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고 강제 개방을 할 경우 내부 잠금장치가 파손되기 때문에 동의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고가 발생하기 20분 전쯤에도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출입문 오작동이 발생해 관리사무소에 신고가 접수됐던 사실도 드러났다. 관리사무소 측은 현장을 확인했지만 엘리베이터 사용을 즉시 통제하거나 관리업체에 점검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발생한 라인에는 2대의 엘리베이터가 있어 1대의 사용을 통제해도 주민들이 이동할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1차 오작동 신고가 있었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칫 엘리베이터가 지하 2층까지 추락해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