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의 기자회견 화법 “~라고 생각합니다”

입력 2017-08-17 19:00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갖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실 새 정부는 작년 겨울 촛불 광장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는 것을 레드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헌 추진은 두 가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65분 동안 특히 많이 사용한 서술어는 “~라고 생각합니다”였다. 한두 질문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답변에서 “(저는 ~라고)생각합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총 26차례 이 서술어가 등장한다. 한 질문에 답하면서 6번이나 쓰기도 했다. “제가 생각하는~”으로 시작하는 대답을 같은 맥락으로 보면, 이 표현은 모두 27차례 사용됐다.

모두발언은 원고가 있었다. 이 원고에도 ‘생각합니다'란 술어가 나온다. “공식 출범은 100일 전이었지만 사실 새 정부는 작년 겨울 촛불 광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번 사용됐다. 모두발언 원고 작성에는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참여했을 것이다. 기자 300명과 원고 없이 진행한 질의응답 과정에서 ’생각합니다‘를 술어로 사용하는 문 대통령의 화법은 더 선명하게 나타났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대북 기조를 말하면서 두 차례 ‘생각합니다’로 말을 맺었다. 한‧미동맹이 허용할 수 있는 북한 군사도발의 임계치, 즉 ‘레드라인’을 말하면서였다. “북한이 ICBM 탄도미사일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북한이 점점 그 레드라인의 임계치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곧바로 이어진 남북관계 관련 질의응답에서도 ‘생각합니다’라는 표현을 두 차례 사용했다. “남북 간에 대화가 재개돼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멈춰야만 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권 1기 내각 인선을 말하는 과정에서는 ‘생각합니다’가 한 차례 늘었다. “현 정부 인사에 대해 (중략) 긍정적인 평가를 국민들이 내려주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국정철학을 함께 하는 분들로 정부를 구성하고자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이 시대의 과제가 보수·진보를 뛰어넘는 국민통합, 또 편 가르는 정치를 종식하는 통합의 정치, 이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후략).”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 CNN 서울지국장의 질문을 청취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의 이런 화법에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의견을 청취하는 평소의 대화 태도가 녹아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은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담고 있다. 이건 나의 생각이니 당신의 생각이 이것과 다르더라도 틀렸다고 말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갖는다. 최고 권력자이지만 ‘일방적 통보’에서 벗어나 ‘협의와 소통’을 시도하려는 모습을 이 화법이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국민’. 모두 46차례 등장했다. 술어 ‘생각합니다’의 사용 빈도는 그 절반 이상이었다.

하지만 세금 정책, 부동산 대책, 한일 위안부 합의, 노동인권 등 확고한 국정철학을 피력할 때는 조금 더 강하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생각합니다’는 한 차례씩으로 줄었다. 

‘생각합니다’가 가장 많이 등장한 사안은 개헌이었다. 개헌은 어떤 것보다 국민적 공감대가 중요한 사안이다. 이 표현은 무려 6차례나 사용됐다. “개헌 추진은 두 가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내년 지방선거 기간에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정부가 국회와 협의하며 자체적으로 개헌특위를 만들어 개헌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우리가 합의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지방분권 개헌, 국민기본권 강화를 위한 개헌 부분은 이미 충분한 공감대가 마련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재정분권의 강화도 함께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후략).”

문 대통령은 외신기자로부터 북핵과 관련한 사안을 질문받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말하는 과정에서도 미국 정부의 입장에 한 번, 우리 정부의 행동에 한 번 각각 ‘생각합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 공격적인 행위를 할 경우 그에 대해 미국이 적절한 조치를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 (이어진 한미 FTA 발언에서) 이런 점들을 충분히 제시하면서 미국과 국익의 균형을 지켜내는 당당한 협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후략).”

마지막으로 질문이었던 탈원전 문제에 답하면서는 ‘생각합니다’를 두 차례 사용했다. “(전략) 공론조사를 통한 사회적 합의 결과에 따르겠다는 것인데 저는 아주 적절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공론조사 과정을 통해 우리가 합리적인 결정을 얻어낼 수 있다면 앞으로 유사한 많은 갈등 사안에 대해서도 해결하는 하나의 중요한 모델로 삼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시간 넘게 기자들과 대화한 문 대통령의 마지막 발언은 이렇게 ‘생각합니다’로 끝났다.

태원준 김철오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