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동건(45)이 마침내 스크린에 복귀했다. 3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를 통해서다. 장르적인 익숙함과 캐릭터적인 새로움 사이에서 그가 보여준 균형감은 탁월하고도 노련했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브이아이피’는 기획 귀순자라는 낯선 소재를 토대로 출발한다. 미국 CIA와 대한민국 국정원이 합작해 북한 고위층 VIP 김광일(이종석)을 귀순시키는데, 귀빈 대접을 받는 그가 잔혹한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이들이 벌이는 이야기다.
여기엔 사건을 은폐하려는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 김광일을 반드시 잡으려는 경찰 채이도(김명민), 김광일에 복수하려는 북한 공작원 리대범(박희순)이 있다. 명확한 목표를 좇는 채이도·리대범과 달리 박재혁은 점차 가치관의 혼란을 느낀다. 사건의 진상이 드러날수록 김광일이 자신이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위험한 인물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박재혁은 냉철하고 이성적이다. 하지만 자신이 비호하고 있던 김광일이 폭주할수록 서서히 달아오른다. 다소 입체적인 캐릭터여서 그 격차를 표현해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터다. 하지만 장동건은 변화의 단계를 촘촘하게 그려나갔다. 과연 25년 경력의 연기 내공은 허투루 쌓인 게 아니었다.
16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장동건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건’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스토리 자체가 박진감 있고 흥미로워서 배우가 뭔가 더하려고 하면 과해질 수 있었다. 덧셈보다는 뺄셈이 더 중요했다. 배우 입장에선 뭔가 덜한 듯한 아쉬움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쿨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장동건은 과감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 배우다. 젠틀한 이미지와 달리 거친 연기를 주로 해왔다. ‘친구’(2001) ‘태극기 휘날리며’(2004) ‘태풍’(2005) ‘마이웨이’(2011) ‘우는 남자’(2014)…. 작품 속 장동건은 거의 매번 싸우고 있었던 듯하다. 이번 ‘브이아이피’에서 역시 그의 근사한 액션연기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난사신이 특히 인상적이다. 총 한 자루를 들고 홍콩의 허름한 건물 앞에 선 장동건. 그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액션이 펼쳐진다. 액션 완성도, 비주얼적 쾌감, 안정적인 감정 처리가 어우러진 이 장면은 장동건이란 배우의 진가를 재확인시켰다.
장동건은 “원래 박재혁이 현장을 뛰던 국정원 요원이었는데 김광일 기획 귀순 사건을 잘 처리해 사무직으로 승진한 인물이라는 설정이었다”며 “홍콩 촬영분에서의 모습은 아마도 관객들에게 익숙한 장동건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무직을 연기할 때가 더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브이아이피’는 장동건이 처음 도전한 멀티캐스팅 영화다. 김명민 박희순 이종석 등 든든한 선후배와 힘을 모아 작품을 이끌어갔다. 이 또한 그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진한 만족감만이 남았다.
“투톱 영화는 있었지만 이렇게 남자배우 여럿이 함께 나온 건 처음이에요. 혼자 할 때보다 훨씬 의지가 되고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재미는 더하고 부담은 덜한’ 작업이 아니었나 싶어요. 굉장히 편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