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은 어떻게 '젠트리피케이션'을 잡았나

입력 2017-08-16 16:54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가로수길, 경리단길, 서촌 등에 이어 새로운 '길' 문화를 형성해 왔다. 중소 피혁 업체 등이 쇠락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던 곳에 다양한 카페와 음식점, 갤러리 등이 하나둘 들어서며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동시에 건물 임대료가 덩달이 뛰었다. 동네가 '떴다' 싶으면 어김 없이 뒤따르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내몰림)은 성수동에도 찾아왔다.

서울 성동구는 16일 이 지역의 '2017년 상반기 상가임대차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올 1~6월 임대료 갱신 계약을 체결한 78개 업체 중 60곳이나 임대료가 동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동네는 떴는데, 임대료가 그대로라는 건 놀라운 결과였다. 홍대 앞, 가로수길, 경리단길, 서촌 그리고 요즘 새롭게 부상한 망원동까지 어떤 동네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성수동에 엄습했던 젠트리피케이션의 기세, 왜 꺾인 것일까.

◇ 임대료 인상률 17.6% → 3.7% '뚝'

성수1가2동의 지난해 평균 임대료 인상률은 17.6%였다. 상인들이 건물주와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거나 새로 체결하려면 기존 임대료에서 20% 가까이를 올려줘야 했다. 이 인상률은 올 상반기에 3.7%로 뚝 떨어졌다. 60곳이나 임대료가 동결된 데다, 인상된 곳은 그 폭이 크지 않았던 덕이다. 특히 성수1가2동에서 인기 거리인 서울숲길 일대는 지난해 임대료 평균 인상률이 19.3%였지만 올 상반기 6%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수치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정한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인 9%에 비해서도 한참 낮은 것이다. 특히 성수동 일대가 최근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상권 중 하나로 임대료가 치솟던 지역이어서 더 놀라웠다. 

성동구는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지속가능발전구역 내 611개 업체 중 올 상반기 임대료 계약을 갱신한 78개 업체를 대상으로 임차인 탐문 방식의 전수 조사를 실시했다. 지속가능발전구역이란 성수1가2동의 서울숲길, 방송대길, 상원길 일대를 말한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막고 지역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구에서 특별 관리하는 곳이다.

비결은 '상생협약'에 있었다. 성동구가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으로 추진해온 조치다. 건물주와 세입자들이 서로 윈-윈 하자며 지자체의 지원 아래 속속 협약을 체결했고, 그 효과를 분석해보니 젠트리피케이션 억제에 상당한 힘을 발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동구 관계자는 “떠오르는 동네로 주목받기 시작한 성수동 지역의 상승된 가치를 건물주뿐 아니라 기존의 지역공동체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상생협약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왔다"며 "그 결과, 임대료가 전체적으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문제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건물주 62% '상생협약' 동참


성동구는 지난해 초부터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을 설정했다. 강제할 순 없는 문제여서 이 상한선을 지키자고 약속하는 건물주·임차인·성동구 간의 상생협약을 추진해 왔다. 1년6개월 만에 성수1가2동 건물주 중 62%가 이 협약에 동참했다. 

임대료를 일정 수준으로 묶어둬야 '길'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에 임대료 인상권을 가진 건물주들이 대거 수긍한 것이다. 임대료가 턱 없이 높아지면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개별 상인들은 거리를 떠나게 되고, 그 자리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자본의 프랜차이즈 매장이 차지하게 된다. 신촌, 이대 앞, 홍대 앞, 가로수길, 경리단길 등 많은 동네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색깔'을 잃어 갔다.

상생협약은 임대료를 둘러싼 '자본의 논리'를 '상생의 논리'로 억제하려는 시도였다. 그렇게 협약이 속속 체결되자 협약에 동참하지 않은 건물의 임대료도 인상률이 떨어지는 모습이 발견됐다. 상생협약을 체결한 건물들은 평균 임대료 인상률이 2.9%로 조사됐고, 미체결 건물도 4.5%에 그쳤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지방정부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정원도 성동구청장은 “상생협약이 임대료를 낮추는 데 효과가 크다고 보고 적용 구역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며 “상생협약이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이행강제성을 부여하거나 동참 건물주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도 적극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