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엔 AI(조류 인플루엔자) 때문에 키우던 닭을 모조리 살처분 했는데 이젠 살충제 계란 파동까지 발생하니…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경남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서 닭 2만여 마리를 키우는 김모(62)씨는 농장 입구에 앉아 “겨우 AI가 진정돼 한숨 돌리나 했는데 느닷없이 살충제 달걀 때문에 난리가 났다"며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어제부터 계란 반출이 금지됐다. 우리 농장에서 수거해간 계란에 대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 농장은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계란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커져서 소비가 위축될까 걱정"이라며 "소비절벽이 이어지면 우리 같은 양계농장은 도저히 살 길이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의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사건 직후 거의 모든 산란계 농장의 계란 반출이 금지됐다. 각 지역 닭 사육농가는 AI 파동에 이어 달걀 파동이 닥쳐오자 파산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김씨 농장 인근의 양계농장주 서모(72)씨는 AI로 닭 5만 마리를 살처분한 터였다. 그의 농장은 텅 비어 있었다. 서씨는 “AI 파동 때 닭을 다 죽인 뒤 다시 입식할 엄두가 나지 않아 농장을 비워두고 있었다”며 “살충제 달걀 파동을 보니 과연 닭을 다시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상북면 신전리에서 산란계 1만5000여 마리를 키우고 있는 박모(60)씨. 그동안 하루 1만개 정도(170만원 상당) 계란을 출하해 왔다. 이번 사태로 출하가 금지된 상태여서 손을 놓고 정부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번 사태 장기화되면 손해가 걷잡을 수 없을 것 같"며 걱정했다. 또 “닭 벼룩이 없어서 살충제를 사용할 이유도 없는 산란계 농장의 계란까지 일부 농장 때문에 불신을 받고 있다. 하루빨리 사태가 진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남 합천에서 9년째 친환경 농법으로 유정란을 생산하고 있는 애향교회 주영환(52) 목사는 “살충제 달걀 파동의 원인은 닭을 철제 우리(배터리 케이지)에서 키우는 밀집사육 양계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주 목사는 “방생하는 닭은 충분히 흙목욕을 하면서 자연히 진드기를 털어낼 수 있는데 밀집된 계사에서는 그러지 못해 농장주들이 손쉽게 관리하려고 살충제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살충제를 뿌리는 과정도 문제”라며 “닭을 양계장에서 비우지 않은 채 그대로 분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경상남도는 3000마리 이상 산란계 농장(96농가 553만4000수)에 대한 우선 검사를 실시하고, 3000마리 미만 농가도 출고 보류와 함께 검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유럽의 살충제 달걀 파동이 발생하자 지난달 20일부터 도내 산란계 농장에서 반출되는 계란에 대해 ‘식용란에 대한 농약 등 잔류물질 검사’를 벌였다. 현재까지 부적합 사례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 검사에서 합격한 농장의 달걀만 반출을 허용하고 검사에서 잔류허용기준 초과 등 검사 불합격 농가가 나올 경우 검사결과 및 유통정보를 신속히 공유하고 유통 중인 달걀을 즉시 수거해 폐기 할 방침이다.
양산=이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