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시대 용어 사용설명서… 대안우파에서 대안좌파까지

입력 2017-08-16 15:47 수정 2017-08-16 15:48
미국 버지니아주(州) 버지니아주립대학에서 지난 11일(현지시간) 남부동맹 기념물 철거에 반대하는 극우세력의 벌어졌다. 이들은 12일에도 샬러츠빌에서 수백명이 모여 대규모 폭력 시위가 벌였다. 버지니아 당국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한편 최소 2000명에서 6000명의 시위대가 모일 것으로 보고 약 1000여명의 경력을 현장에 배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극우 백인우월주의 집회에서 발생한 ‘샬러츠빌 유혈사태’와 관련해 백인우월주의자뿐 아니라  ‘맞불’ 세력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뉴욕 트럼프타워 기자회견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시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당신들이 말하는 대안우파(alt-right)에 달려든 대안좌파(alt-left’)는 어떻게 하냐. 그들은 전혀 죄가 없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양쪽 모두 책임이 있다. 그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해 양비론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안 좌파(alt-left)’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이 말은 정치 조어로 떠올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됐을 때는 ‘대안 우파(alt-right)’가 트럼프 시대의 주류로 부상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기도 했다. 

대안 우파와 대안 좌파뿐만이 아니다. ‘안티파(Antifa)’ ‘SJW’ ‘Cuck’ 등등 각종 신조어가 쏟아지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즈는 “15일 백인우월주의자들과 극우 극단주의자들이 사용하는 표현에 대한 간략한 안내서”라며 이 용어들을 정리했다.
군복차림을 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12일 미국 버지니아주 샬로츠빌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 대안 우파(Alt-Right)

미국판 '일베'. ‘대안적 우파(Alternative right)’라는 표현의 줄임말이다. 대안우파는 백인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바탕을 둔 극우 인종주의를 뜻한다.  

이들의 목표는 백인국가 건국과 그들 사이에서 ‘죽음의 이데올로기’라 불리는 ‘좌익주의’ 파괴에 있다. 대안우파의 리더인 리처드 스펜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백인을 위한 정체성 정치’라고 정의한다. 

그들은 또 반이민주의, 반페미니즘, 동성애 혐오, 반이슬람, 반복지정책을 표방한다. 게이와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구심점이 없이 분산돼 있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넓은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의 이데올로기는 통렬한 풍자와 함께 인종주의자와 성차별주의자들에게 널리 퍼져 나간다.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있는 이들의 사상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하나로 묶는 구심점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격렬한 반발이다. 

대안우파는 반지성주의를 표방한다. 고등교육은 인지적 엘리트에게나 적합하며, 대다수 시민은 직업학교나 견습과정에서 교육을 받아햐 한다고 믿는다. 이에 자유주의자와 민주당으로부터 비난받는 것은 물론이고 전통적인 보수파로부터도 인종 차별주의라고 공격받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에서 백인 극우파 집회에 반대하는 시위단체의 거리 평화행진 도중 은색 차량 한 대가 시위대로 돌진하고 있다.

◇ 대안 라이트(Alt-Light)

대안 우파에서 떨어져 나온 세력의 사람들을 가르키는 단어다. 백인 인종우월주의 선동단체들을 고발하는 인터넷 사이트 ‘헤이트워치’의 편집자 라이언 렌즈는 “대안 라이트는 인종주의적인 태도를 제거한 대안 우파와 같다”며 “두 진영 양쪽에 걸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두 집단은 종종 온라인 상에서 유대인 문제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예를 들어 유대인이 정부와 뉴스 미디어를 교묘하게 조종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가 같은 문제들이 다뤄진다.

◇ 안티파(Antifa)

반파시스트(anti-fascist)의 줄임말이다. 1960~1970년대 독일에서 극우파에 대항하는 조직이 등장하면서 생겨난 단어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비슷한 움직임이 생겼다가 최근 대안 우파가 급부상하면서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백인 극우주의자들과의 무력 충돌이다. 렌즈는 이러한 움직임을 “오랜 좌익 극단주의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피트커베이지는 “안티파는 극우세력을 굴복시킬 수만 있다면 길거리 패싸움에도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샬러츠빌 사태에서 좌파에게 책임을 지우고 싶었다면 대안 좌파보다는 안티파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한 선택이었다.

◇ 커크(Cuck)

‘커크’는 ‘바람난 아내를 둔 남편’이라는 뜻으로 대안우파가 상대의 남성성을 모욕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다. 대안 우파 세력은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을 조롱하기 위해 이 단어를 쓴다. 전통 우파의 태도는 ‘나이브하다’는 인식이 이 단어에 깔려있다.

◇ SJW(social justice warrior)
‘사회적 정의의 전사(social justice warrior)’를 줄인 약어로 페미니즘, 반인종주의적 정의, 게이와 트랜스젠더의 권리 등을 옹호하는 사람을 비꼬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 단어에는 온라인 공간에서만 대의명분에 대해 지지하고, 겉으로만 진정성 있는 척하는 소위 ‘입진보’에 대한 조롱도 담겨있다.
나치의 '피와 토양' 마크

◇ 피와 토양(Blood and Soil)

12일(현지시간) ‘샬러츠빌 유혈사태’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행진을 진행하며 외친 구호다. 이 구절은 19세기 독일 민족주의 용어에서 비롯됐다. 독일 인종의 피와 그들의 땅이 신비롭게 연결돼있다는 의미다. 

피트커베이지는 “이 구절은 1930~1940년대 독일에서 나치의 슬로건으로 사용됐다”며 “이후 전세계의 네오나치 집단과 백인 우월주의 집단이 이 단어를 계승했다”고 말했다. 대안우파 세력이 그들의 슬로건으로 채택한 나치의 상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 백인 학살(White Genocide)
‘백인 학살’은 백인이 비백인 이민자들과의 결혼으로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믿음이 담긴 단어다. 렌즈는 이러한 믿음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유대인이 이 과정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반이민주의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논쟁이다.

이 개념은 전 경제학 교수이자 레이건 정부에서 인사관리처 임명직으로 공직에 있었던 밥 휘태커에 의해 세간에 알려졌다. 그는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사람은 백인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막말을 뱉기도 했다.

피트커베이지는 “백인 학살이라는 개념은 14개의 단어로 쪼개져 온라인 공간으로 퍼져 나간다”고 말했다. 14개의 단어는 “We must secure the existence of our people and a future for white children(우리는 우리 국민의 존재와 백인 어린이의 미래를 보장해야 합니다)” 으로 이뤄져있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13일(현지시간) 게리 스튜어트란 남성이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군을 이끈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앞에 서서 "백인우월주의를 끝내자"는 구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 대안 좌파(Alt-Left)
미국의 극단주의자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사실 ‘대안 좌파(Alt-Left)’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반명예훼손연맹(ADL)’의 분석가 마크 피트커베이지는 이 단어를 ‘허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대안좌파는 극우세력이 자신들에 맞서는 가상의 적을 만들기 위해 고안한 용어”라며 “거기에는 극우세력이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좌파’라는 이름으로 모호하게 뭉뚱그려져 있다”고 말했다.

피트커베이지는 “실제로 대안좌파 단체나 운동, 네트워크 같은 것은 없다”며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뉴스는 전부 ‘가짜뉴스’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이 단어도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