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집 사육’.
살충제 달걀 사태의 원인을 찾아 들어가면 ‘움직일 틈도 없는 좁은 우리’에 닭을 빽빽하게 몰아넣고 키우는 사육 방식에 이르게 된다. 활동성이 떨어지니 병충해에 취약하고 수많은 개체가 밀집해 있어 질병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감염된다. 그래서 더 강한 살충제를 더 많이 뿌리기를 반복해오다 사람이 먹는 달걀에까지 살충제 성분이 묻어나왔다.
이는 2011년 전국을 덮친 ‘구제역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많은 전문가들이 똑같은 논리를 폈다. “돼지 농가는 새끼를 낳는 어미 돼지를 스톨이라 불리는 철제 틀에 가둬놓고 인공수정과 출산을 반복한다. 스톨 크기는 가로 60㎝, 세로 210㎝ 정도다. 그 안에서 운동능력이 퇴화한 어미는 풀어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서로를 공격하기도 하는데 이를 막으려 앞니를 뽑는다.” 이런 환경은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구제역이 발생하면 광범위하게 확산되곤 한다는 거였다.
‘동물복지’의 중요성을 알려준 2011년 구제역 파동 당시 정부는 여러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산란계 농가의 ‘닭장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그 중에 포함돼 있었다. 6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닭이 좁은 우리에서 옴짝달싹 못하며 낳은 달걀을 먹고 있다. 그 달걀에서 검출된 살충제 성분은 동물의 환경을 외면한 탓에 돌아온 부메랑이다.
◇ “닭장 속의 닭, 병에 안 걸리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
국내 산란계 농장 관계자는 15일 "닭 진드기는 무더운 7~8월에 기승을 부린다. 닭이 움직이지도 못하게 좁은 우리에 넣어 키우다 보면 진드기가 순식간에 옮는다. 닭 진드기를 잡으려면 살충제를 뿌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 광주의 농장 계란에서 나온 살충제 성분 비펜트린은 닭에 기생하는 진드기(일명 와구모)를 잡는 데 쓰인다. 야생의 닭은 땅에 몸을 문지르는 ‘흙목욕'이나 발로 모래를 몸에 뿌려 해충을 없애는데, 좁은 축사에선 이렇게 스스로 벌레를 잡는 동작이 불가능하다. 진드기 번식이 늘어나면 산란율은 떨어지고 폐사율은 높아져 산란계 농가는 살충제로 닭 진드기를 잡아 왔다.
정부는 닭 진드기용 살충제로 비펜트린 등 13가지 성분을 허용하고 있다. 각각 잔류 허용치를 설정하고 이를 초과하지 않았는지 검사한다. 지난해부터는 달걀을 대상으로 살충제 27종 검출 검사를 실시해 왔다.
살충제 살포가 거듭되면 해충은 면역을 얻는다. 더 강한 살충제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정부가 허용하지 않은 살충제를 살포하는 상황은 면역이 생긴 해충을 잡기 위해 벌어진다. 경기 남양주 농가에서 검출된 살충제 성분 피프로닐도 소·돼지·닭처럼 인간이 직접 섭취하는 동물에는 사용이 금지돼 있는 것이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관계자는 "양계장에 가보면 좁은 케이지를 4∼5단씩 쌓아 올려 그 안에서 닭을 꼼짝 못하게 가둬놓고 기른다. 닭이 병에 걸리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고 했다. 닭이 도저히 건강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병을 막기 위해 독성을 높여가며 살충제를 뿌리는 악순환의 고리가 마침내 살충제 달걀 사태로 터져버린 상황이다.
◇ “돼지는 행복해야 한다”… 돼지의 5대 자유
2011년 구제역이 처음 발병한 경북 안동에서 자동차로 불과 40분 거리인 충북 단양에 ‘단양유기농원’ 있다. 이곳 돼지들은 전국의 1000만 마리 돼지 중 조금 다른 삶을 누리고 있다. 4000평 농장의 축사는 세 동이다. 각각 길이 32m에 폭 13m 공간이 칸막이 없이 뚫려 있다. 돼지들은 여기서 급수기 꼭지를 빨아 물을 마시거나, 사료통에 머리를 박고 밥을 먹거나, 20㎝ 두께의 톱밥 위에 누워 자거나, 제각기 다른 행동을 한다. 껑충껑충 뛰어다닐 수 도 있다.
“밥 먹는 시간이 따로 없어요. 물도, 사료도 모두 무제한 자동 공급됩니다. 돼지들이 먹고 싶을 때 먹고,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뛰어놀다가 배고프면 또 알아서 먹는 거죠. 날씨 따뜻할 땐 밖에 나가서 놀기도 하고요(사진처럼 축사 옆에 꽤 너른 풀밭이 있다). 효소 섞은 톱밥을 깔아서 분뇨는 냄새 없이 발효돼요. 이걸 수시로 수거해서 퇴비로 친환경 농가에 팔아요.” 이 농장의 강유성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그토록 기승을 부린 구제역도 이곳엔 침투하지 못했다.
강 대표는 경기도 여주에서 5년간 양돈을 하다 2005년 이곳으로 옮겼다. 여주에선 다른 농장처럼 밀집사육이었는데, 독일로 축산연수를 가서 방목하는 돼지를 보고 이런 개방형 농장을 시도했다. 돼지들의 ‘복지’를 위해 뭘 해주냐고 묻자 돼지의 ‘5대 자유’를 설명했다.
①배고픔과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 ②불편으로부터의 자유 ③고통과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④정상적인 활동을 할 자유 ⑤공포와 불안으로부터의 자유.
동물복지(animal welfare) 개념은 1964년 영국에서 ‘동물 기계(Animal machines)’란 책이 발간되면서 구체화됐다. 저자 루스 해리슨은 꼼짝달싹 못하게 좁은 공장식 농장에서 단지 고기가 되기 위해 밀집사육되는 소 돼지 닭의 실태를 고발했다. 이듬해 영국 정부는 농장동물복지위원회(FAWC)를 구성했고, 이 위원회가 79년 발표한 게 가축에게 보장돼야 할 ‘5대 자유’다.
“물과 사료를 많이 준다고 다가 아니에요. 2시간마다 순찰하면서 사료통은 깨끗한가, 물은 잘 나오나 살핍니다. 돼지도 서열이 있고, 이지매가 있어서 먹이가 많아도 약한 놈은 잘 못 먹어요. 그래서 사료기를 일반 농장보다 15% 많이 설치했어요. 싸우지 말라고.” 강 대표의 말은 ①번 자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우리가 무항생제 1호 양돈농장이에요. 밀집사육은 호흡기 생식기의 세균성 질병이 많아서 사료에 항생제를 섞어 먹입니다. 항생제 없이 면역력을 갖추려면 위생과 운동밖에 답이 없어요. 그래서 농림수산식품부 기준보다 세 배쯤 넓은 공간을 주고 톱밥 축사를 만들었어요.” ③번과 ④번 자유에 해당한다.
단양유기농원의 조금종 이사는 “사람이 축사에 들어가면 돼지들이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곁에 몰려드는 게 일반 농장과의 차이”라며 “돼지 1200마리면 보통 50마리 정도는 늘 병에 걸려 격리되는데, 여긴 서너 마리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 동물복지의 경제학
2001년 2월 19일 영국 남동부 에식스 주의 한 도축장에서 돼지 27마리가 구제역 증상을 보였다. 다음 날 확진 판정이 나왔고, 살처분과 긴급 방역이 시작됐지만 한 달도 안 돼 스코틀랜드까지 감염됐다. 바이러스는 바다를 건너 아일랜드 네덜란드 프랑스로 번졌다. 같은 해 10월 소멸될 때까지 소 양 돼지 60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피해액은 약 10조원.
살처분 방법은 매몰이 아닌 소각이었다. 안락사시킨 가축을 들판에 쌓아놓고 태우는데, 미처 숨이 끊어지지 않은 돼지들이 깨어나 몸에 불이 붙은 채 날뛰곤 했다. 이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살처분의 잔혹함이 도마에 올랐다.
발병 추이가 한풀 꺾였던 같은 해 5월 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유럽연합(EU) 농업장관 회의가 열렸다. EU 의장국이던 스웨덴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 큰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농업의 위기다. 동물복지를 어떻게 개선할지 논의하겠다.”
그리고 6년 뒤인 2007년 9월,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자유무역협정(FTA) 3차 협상장. 자동차를 비롯해 굵직한 쟁점들을 챙겨 갔던 한국 협상단에게 EU 측은 돌연 이런 카드를 내밀었다. “한국에선 돼지나 닭이 학대받는다. 공장식 밀집사육인데다 도축 과정도 불투명하다. 동물복지가 보장되지 않은 축산물은 수입할 수 없다.”
동물복지 정책은 동물도 ‘감각이 있는 존재(sentient beings)’라는 철학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국제통상의 이슈가 돼버렸다. 동물의 복지가 사람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유럽은 2001년 구제역 사태를 겪은 뒤 동물복지 정책을 대폭 강화하며 이 흐름을 주도한다.
EU는 2006년 가축 성장촉진제와 항생제 사용을 못하게 했다. 내년부터 지나치게 비좁은 닭장, 임신한 돼지가 앉았다 일어서는 것 외엔 움직일 수 없는 ‘스톨 사육’을 전면 금지한다.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등 국토가 좁은 나라는 가축분뇨 발생량 등을 제한해 사육두수를 조절하고 밀집사육을 억제한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를 주도하며 사육 운송 도축 가공 등 모든 분야의 동물복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