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친구 사귀기 힘든 외동 아들

입력 2017-08-16 07:03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Y는 초등학교 5학년 외동의 남자 아이다. 여리고 소심해 친구 사귀기가 힘들다고 병원을 찾았다. 

어려서부터 예민하기도 하고 낯가림도 심했다. 새로운 장소에만 가도 심하게 울고 엄마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동네 어른을 만나도 엄마 뒤에 숨어서 인사조차 하기 힘들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두 명이 거의 유일한 친구이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이들하고만 어울렸다. 더우기 이 친구 둘이 혹시 자기만 빼고 더 친해 질까봐 몹시 신경을 쓰며 말 한마디에도 몹시 불안했다.

활달한 성격인 Y의 엄마는 이런 Y가 이해되지 않았다. 인사도 잘 못하는 Y를 야단쳤고, 답답해서 한숨을 쉬며 핀잔을 주거나 ‘왜 그것도 못해’라며 화를 낸 적도 많았다. 물론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건 알기 때문에 후회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반면, 엄마와 달리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빠는 어린 시절에 자신도 비숫했다며 아이도 나이가 들면 나아질거라 생각,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5학년이 되도 나아지기는 커녕 심해지고 시간이 있으면 컴퓨터 게임만 하더니 급기야 게임에 중독 수준으로 빠져들어 병원을 찾았다. 

Y는 병원에 와서도 눈 맞춤도 제대로 못하고 쭈뼛거리며 놀이도 선택하지 못했다. 관심 있는 놀이감만 뚫어지게 보았다. 한참 동안을 그러더니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거절할 까봐 두렵다’ ‘자기가 말을 하면 친구들이 반응을 안 해 주면 어쩌나... 비웃으면 어쩌나....’하는 마음에 말을 걸기가 어려워 누군가 다가와 주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하지만 저처럼 운동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를 누가 좋아해 다가오겠어요?’  엄마는 이런 아이의 마음도 모르고 ‘어렵지도 않은 걸 왜 못해? 그냥 먼저 다가가면 되잖아?’ ‘니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지 친구도 다가오지?’ 하는 말만 반복했다. 엄마가 그러면 그럴수록 Y는 더욱 위축됐다. 자신이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것도 못하는 바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츰 ‘자신은 문제가 있는 아이’ ‘남들과 다른 아이’라고 느껴졌다.

Y의 성향은 섬세하고 감성적이어서 대다수 남자 아이들과는 좀 ‘다를 뿐’ 절대로 ‘열등’한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의 성향을 인정하지 못하는 엄마로 인해 아이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된 모양이다.

하지만 아빠처럼 ‘어렸을 때 나도 그랬어. 그러나 지금 잘 살고 있잖아’라며 회피하면서 문제를 키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Y의 기질은 아빠를 유전적으로 닮았다. 그러나 기질은 어떤 환경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 그리고 아빠가 살았던 시절과 요즘의 사회적 환경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물론 가족의 상황도 많이 다르다. 기질의 특성에서 부적응적인 면은 좋은 환경을 만나면 나이가 들면서 엷어지고 적응적이 된다. 하지만 바람직한지 않은 환경을 만나면 더 심하게 악화돼 질병이 된다.

Y와 같은 외동아이들의 부모들은 친구를 사귀지 못하면 ‘외동’이어서 그러려니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외동’이라고 다들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형제가 있는 아이들이 집안에서 형제들끼리만 노는 시간이 많은 것에 비해 외동들은 집밖에서 친구를 찾으려는 경향이 강해 친구가 많은 편이다. 물론 형제들 간의 다툼, 질투, 경쟁을 겪으며 갈등해결 연습할 기회가 부족한 측면은 있기는 하지만. ‘외동아이는 사회성이 떨어진다’ 것도 일반화의 오류이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관계 지향적이어서 친구 관계에 예민하고 질투도 많아 단짝을 빨리 만든다. 그리고 늘 붙어 다니는 단짝이 없으면 불안해 한다. 반면 남자 아이들은 대체로 과제 지향적이어서 친구 관계에 민감함이 덜한 편이고, 친구도 영역별로 가진다. 놀이할 때 친구가 있고 공부 할 때 친구가 따로 있다.

Y는 여성성이 강하고 감성적인 아이로 상대의 감정을 빨리 알아차리고 공감 능력이 좋은 아이다.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에게는 먼저 위로해주는 편이었다고 한다. 다른 남자 아이들이 갖지 못한 ‘위대한’ 특성을 가진 아이였다. 그래서 한번 친구와 가까워지면 깊이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아이다. 이런 아이의 ‘위대한 특성’을 부모가 장점으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부모가 먼저 인정해 주자. 진심으로!!

친구를 만들 때 여럿이 같이 하기 보다는 먼저 한명의 아이와 놀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Y는 축구, 농구 등 다수가 하는 운동은 못하지만 베드민턴, 탁구 등 둘이 하는 운동은 곧 잘 했다. 이런 운동 클럽 등에 가보거나 비슷한 성향의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와 먼저 사귀게 했다. 결과 Y는 빠른 속도로 자존감이 향상되면서 장점은 차츰 빛을 발했다.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