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美에 공 넘긴 北… "지켜보겠다"에 담긴 뜻

입력 2017-08-15 15:40
김정은 위원장이 14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는 모습. 조선중앙TV. 뉴시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4일 '괌 포위사격' 작전계획을 보고받았다. 북한이 김 위원장에게 작전 보고가 이뤄진 사실을 도발 전에 미리 공개한 건 처음이다. 그동안 북한은 도발 직후 김 위원장에게 보고됐다는 사실과 김 위원장의 서명이 적힌 명령서를 공개하곤 했다. 도발은 대개 김 위원장의 보고 청취와 승인 후 1~3일 뒤에 이뤄졌다.

군사작전 계획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명령권자에게 보고된 사실까지 밝히는 것은 실행할 생각이 별로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고를 받은 김 위원장의 반응은 이런 해석과 부합하는 것이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김락겸 전략군 사령관의 보고를 듣고 "매우 치밀하고 용의주도하게 작성됐다"고 평가했다고 15일 전했다. 또 김 위원장이 '미국의 행태'를 지켜본 뒤 작전 실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고 했다. “비참한 운명의 분초를 다투는 고달픈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리석고 미련한 미국 놈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보겠다. 과연 지금의 상황이 어느 쪽에 더 불리한지 명석한 두뇌로 득실관계를 잘 따져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미국의 태도에 따라 괌에 미사일을 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발언이 나온 맥락을 보면 애초에 괌 포위사격을 실행할 의사가 별로 없었다는 적극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김 위원장이 "지켜보겠다"면서 미국을 향해 꺼낸 또 다른 말은 “세계 면전에서 우리에게 또 다시 얻어맞는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정확히 판단해야 할 것”이었다. 우리가 미사일을 쏘지 않도록 잘 좀 해보라는 투의 '촉구'가 담겨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14일 전략군 사령부에서 괌 포위사격 방안을 보고받고 있다. 조선중앙TV. 뉴시스

김 위원장은 이번에도 벼랑 끝에서 벌이는 줄다리기란 의미의 '살라미 전술'을 택했다. 북한은 2015년 8월 목함지뢰 도발 당시 남북 간 긴장강도를 크게 끌어올린 뒤 돌연 남측에 대화 제의를 해왔다. 이번 북·미 대립에서도 이번 주 들어 미국의 대북 메시지에 톤다운이 감지되자 상응하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공은 다시 미국 쪽에 넘어간 형국이 됐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한반도 주변에서 위험천만한 망동을 계속 부리면 중대한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21일 시작하는 한·미연합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지칭한 것일 수 있다. UFG 연습 규모를 축소하는 식의 '성의'를 주문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특히 B-1B 랜서 등 괌 주둔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전개되는지 유심히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이런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배경에는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의 불완전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동엽 교수는 “대북 군사 대응의 한계도 한계지만 자칫 북한 미사일에 대한 요격 실패가 가져올 MD의 민낯이 미국에 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면서 “미국 내부에서도 이런 우려의 목소리가 이미 나오고 있다. 북한도 이걸 정확히 읽는 듯하다”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