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샬러츠빌 차량테러' 희생자 헤더 헤이어(32)를 추모하는 행렬이 잇따르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물론이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도 헤이어의 이름을 외치며 그의 죽음에 분노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는 12일(현지시간)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집회가 열렸다. 집회 참가자와 반(反)인종차별주의자들이 충돌한 상황에서 승용차 한 대가 군중을 향해 돌진해 32세 여성 헤더 하이어가 숨졌다. 최소 19명의 부상자도 발생했다. 차량 운전자는 제임스 알렉스 필즈(20)로 백인우월주의 시위에 참가하려고 "트럼프 집회에 간다"는 말을 남긴 채 집을 나선 청년이었다. 필즈는 현장에서 체포돼 2급 살인죄와 3건의 상해죄로 기소됐다.
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트위터에는 '#HeatherHeyer'라는 태그가 등장했다. 그의 사진과, 현장에 있었던 친구의 증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인들은 그가 평소 동성애자와 흑인 인권에 관심이 많았으며 늘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다고 전했다. 헤이어가 살았던 집 앞에 걸린 팻말을 찍은 사진도 트위터에서 공유되고 있다. 팻말에는 "이민자, 동성애자, 피부색으로 차별받는 사람들, 무슬림, 여성을 환영한다"고 적혀 있다.
차량이 돌진하기 직전 헤이어와 함께 걷고 있었다는 마리사 블레어(27)는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회상했다. 헤이어, 블레어, 블레어의 약혼자가 함께 길을 걷던 중 차 한 대가 그들 앞으로 순식간에 돌진했다. 차와 부딪치기 직전 블레어의 약혼자는 블레어를 손으로 밀쳐 피신시켰고 덕분에 그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약혼자는 피 웅덩이에 쓰러져 있었고 급히 병원으로 이송된 후 경찰으로부터 헤이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고한 시민의 희생에 미국인은 분노했다. 13일(현지시간) 뉴욕에서는 시민들이 "No Trump, No KKK(극단적 백인우월주의자 집단)"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시카고에도 헤더 헤이어를 기억하려는 시민들이 모여 꽃을 하늘 높이 들어보이는 집회가 열렸다. 그가 희생된 샬러츠빌 4번가에는 추모객이 남긴 메시지와 꽃이 놓여 있다. 일부는 그의 사진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백인우월주의 집단을 강력히 규탄했다. 헤이어의 어머니는 미국 허핑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아이를 잃고 싶어 하는 엄마는 없다. 하지만 나는 헤이어가 한 일이 자랑스럽다"며 눈물을 보였다.
NYC stands with Say her name:
— PolitiKiss (@PolitiKiss1600)
샬러츠빌 사태는 시 정부가 샬러츠빌 해방공원에 있는 로버트 리 장군 동상을 철거하기로 발표하면서 벌어졌다. 로버트 리 장군은 흑인 노예제도 폐지를 두고 벌어졌던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도에 찬성하는 남부군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백인우월주의자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에 동상 철거에 반발한 미국 전역의 백인우월주의 극우단체 회원 6000여명이 샬러츠빌에서 집회를 열었고 이를 규탄하는 반인종차별주의자들의 행진이 있었다.
이번 사태 이후 차량테러 용의자의 고등학교 역사교사였던 데렉 와이머는 1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필즈가 독일 나치군에 대해 심층적으로 조사한 리포트를 쓴 적이 있다"며 "독일군과 SS친위대에 푹 빠진 듯 보였다"고 말했다. 또 "필즈에게 나치즘의 실상을 설명했지만 설득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이에 버지니아주의 공공안전 담당 장관 브라이언 모란은 필즈를 "테러리스트"라고 지적했다. 미 언론도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 불거진 최악의 인종 갈등"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 또한 트위터에서 샬러츠빌 사태를 언급하며 "그 누구도 피부색, 출신, 종교를 이유로 다른 사람을 증오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