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전쟁 결심하면 사실상 막을 수 없다?

입력 2017-08-11 05:33
TV 뉴스 화면에 나란히 등장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전쟁을 결심하면 그의 의지에 따라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가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제공격 명령이 내려지면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를 출격시켜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중점 타격하는 구체적인 작전계획까지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간 ‘설전’이 ‘실전’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미군 통수권자인 트럼프가 전쟁을 벌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사실상 결전을 제어할 수 없다는 우려에도 무게가 실린다. 9일(현지시간) CNN방송이 짚어 본 유권해석에 따르면 미국 헌법은 선전포고의 권한이 의회에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미국 대통령은 미군 최고 지휘권자로서 미국을 위협에서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사행동에 돌입할 고유의 권한이 있다.

더욱이 미 의회가 무력행사를 금지하거나 대북 군사행동을 위한 예산 집행을 막을 수는 있지만, 1973년 제정된 ‘전쟁권한법’을 근거로 트럼프 행정부는 최소한 60일 동안 독자 권한으로 군사 행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위한 전쟁’이란 명분 아래 의회의 견제 장치를 뛰어넘는 광범위한 재량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 미국 안보·법률 분야 전문가들의 다수 의견이다.

미 하원 군사위원회 고문을 지낸 로저 자크하임 변호사도 CNN에 “헌법 (상의 권한)과 집행의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의 안전 보장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군사행동을 취했던 수많은 전례가 있다”고 강조했다.
9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반대 평양시 군중집회. [조선중앙TV 캡처]

앞서 백악관은 지난 4월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시리아를 공습할 때도 행정부의 군사행동에 대해 의회의 재가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숀 스파이서 전 백악관 대변인도 시리아 공습 당시 북한에 대해서도 미 행정부만의 재량으로 군사행동을 취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행정부의 권한을 규정한) 미국 헌법 제2조에 따라 (독자적 군사행동 개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트럼프의 ‘결심’에 한반도 전쟁 여부가 달려있는 상황에서 ‘B-1B 랜서'를 앞세운 대북 선제타격 계획이 가시화되고 있는 정황은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 NBC방송은 복수의 전·현직 군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전략자산을 동원한 공습은 “모든 군사 옵션 가운데 상황을 고조시킬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방안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미국 공군의 ‘B-1B 랜서'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는 B-52, B-2스피릿과 함께 미국의 3대 전략폭격기로 적지를 융단폭격할 수 있는 가공할 파괴력을 갖췄다. 최대 비행속도가 마하 1.2로 B-2(마하 0.9)나 B-52(시속 957㎞)보다 빠르다. [AP뉴시스]

미 행정부 내에서도 선제 공습계획은 ‘좋은 선택이 없는 실정’에서 ‘여러 가지 나쁜 선택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이란 기류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B-1B 랜서'가 핵무기를 탑재할 수 없는 기종이란 측면도 미국이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 현재 상황 이상의 전면전을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강조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B-1B 랜서'는 작전 운용능력에 있어서도 북한 상대 전략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사시 괌에서 이륙해 2시간이면 한반도에 전개할 수 있고, 스텔스 기능까지 탑재하고 있어 고속으로 적 방공방과 전투기를 무력화시킨다. 탑재 무기의 종류와 양도 현재 미 공군이 보유한 전략 폭격기 중 가장 많다. 레이저 유도 합동 직격탄(LJDAM: GBU-54)과 합동 공대지 장거리 미사일(JASSM: AGM-158) 등의 정밀 유도무기를 최대 24개까지 탑재할 수 있고, 재래식 폭탄은 60t까지 실을 수 있다. 특히 사거리 370㎞의 JASSM 미사일은 북한 영공 밖에서 공격이 가능해 ‘B-1B 랜서' 편대가 한반도 밖에서 북한 내 표적을 타격할 경우, 한국에 대한 북한의 보복 공격 빌미를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전에서 ‘B-1B 랜서'는 호위 전투기 편대와 공중급유기, 전자전기, 첩보위성, 드론 등의 지원을 받으며 작전을 수행한다. [AP뉴시스]

외관이 백조를 닮아 ‘죽음의 백조’란 별명을 가진 ‘B-1B 랜서'는 현재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 6대가 전진 배치돼 있다. 북한 위협이 고조된 지난 5월 말 이후 지금까지 선제타격 상황을 상정해 모두 11차례의 출격 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익명의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NBC방송에 ‘B-1B 랜서'를 동원한 타격계획이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라면서, 실제 타격은 육·해·공군이 동원될 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도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