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철도왕 윌리엄 밴더빌트의 딸이자 400만 달러 유산의 상속녀. CNN 유명 앵커 앤더슨 쿠퍼의 어머니로도 유명한 글로리아 밴더빌트는 2015년 91세 생일을 앞두고 돌연 쓰러졌다. 쿠퍼는 좋지 않았던 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1년간 이메일 편지를 주고받으며 죽음 앞에 선 어머니의 인생, 명성, 돈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었다. 그리고 편지를 모아 2016년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마지막 수업'이란 제목의 책을 펴냈다.
지난 4월 93세가 된 글로리아 밴더빌트는 이번엔 세계의 모든 '남는 자'들을 위해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이 곳에서 그는 60년대의 대저택, 염문설을 뿌린 당대 스타들의 사진과 함께 당시 문화예술계의 비화를 담담히 털어놓고 있다. 미국 재벌가의 상속녀로 화려한 삶을 살아온 그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연 지 석달여 만에 팔로어는 13만명을 넘어섰다. 5월에는 새롭게 떠오르는 인스타그램 유명인사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팔로어들은 당대 최고 사진작가의 미공개 작품, 전설적 희극인 찰리채플린과 만찬을 즐긴 다이닝룸 등을 보며 추억에 잠겨들었다. 그는 유명인사였던 자신의 삶이 행복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열등감이 많은 소녀였다"고 고백하며 이제 곧 떠나게 될 자로서 93년의 인생을 차곡차곡 정리해가고 있다.
밴더빌트는 인스타그램에서 소문이 무성했던 개인사도 솔직히 공개했다. 배우 말론 브란도,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 등과 염문설을 뿌렸던 그는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와의 사진을 올리며 "그리 오래 갔던 사랑은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그레이스 켈리, 샤론 스톤 등의 사진을 찍은 할리우드 스타 사진작가 조지 허렐이 찍어준 미공개 사진을 올리면서는 "허렐은 파티에서 만난 내가 '무관심하고 지루해 보였다'고 했지만 아니었다. 나는 어른이 되는 걸 무서워하는, 두려움으로 마비된 소녀였다"고 말했다.
밴더빌트가는 록펠러, 카네기가와 함께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부를 일군 집안으로 유명하다. 당시 윌리엄 밴더빌트의 수입은 미국 재무부 연간 예산보다 많을 정도였다. 그러나 글로리아 밴더빌트가 2살 되던 해 갑자기 사망했고 그 많은 재산은 모두 글로리아 밴더빌트에게 상속됐다. 이 때문에 어머니와 고모들 사이에서 상속 분쟁이 벌어졌고 결국 밴더빌트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 고모들과 살게 된다.
결혼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영화제작자 팻 디치코,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영화감독 시드니 루멧, 작가 와이엇 쿠퍼와 4번의 결혼생활을 했다. 마지막 남편 와이엇 쿠퍼와 드디어 정착하는 듯했으나 쿠퍼 역시 심장수술 중 세상을 떠났다. 또 10년 뒤 앤더슨 쿠퍼의 형 카터 쿠퍼는 밴더빌트가 보는 앞에서 투신 자살했다. 그 충격에 앤더슨 쿠퍼는 2000억원이 넘는 유산을 거부하고 집을 떠나 기자가 됐다.
이런 불운했던 개인사와 달리 밴더빌트의 예술 감각은 그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줬다. 1955년 첫 시집 '연시집'을 출판한 후 내놓는 에세이, 시집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1979년에는 의류업체 무르자니와 공동으로 '글로리아 밴더빌트 디자이너 진'을 설립해 패션 디자이너로 크게 성공했다. 미술을 공부한 뒤에는 유화와 파스텔화 등을 모아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왕성히 그림을 그리는 그는 인스타그램에 최근의 작품들을 공개하고 있다.
밴더빌트는 인스타그램을 만든 후 5월에 가진 한 매체 인터뷰에서 "이건 마치 마술 같다"며 "내가 글을 올리면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확인하고 그게 그들의 삶에 감동을 준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밝혔다. 이어 "아들이 권유해 시작하게 된 것"이라며 "이제는 너무 중독된 내게 하루에 2건씩만 올리라고 주의를 준다"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