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빈곤과 전쟁' 키워드…①부양완화 ②일자리 ③부정감시

입력 2017-08-10 14:00
2014년 2월 생활고 시달린 송파 세모녀가 집세·공과금 남기고 동반자살했다.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문모(81)씨는 서울 종로구 허름한 월세방에 혼자 산다. 월 소득은 기초연금 20만원 남짓이 전부. 이마저도 월세를 내면 수중에 4만원도 채 남지 않는다. 이 돈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형편이 어려워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정부는 '부양의무자'인 그의 큰딸에게 "부양이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왔다. 

문씨는 “힘들고 가난해도 장애인 아들을 키우는 자녀에게 손 내밀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소득인정액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 기준 이하임에도 수급자가 아닌 ‘비수급 빈곤층’이 됐고, 그렇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 문씨 같은 비수급 빈곤층은 2015년 현재 총 93만명이나 된다.

정부는 문씨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몰린 이들을 위해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18~2020년)을 수립했다고 10일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모든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급여별·대상자별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고, 비수급 빈곤층 등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2016년 말 163만명에서 2020년 252만명으로 증가하고, 비수급 빈곤층은 2020년까지 최대 60만명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새 정부의 ‘빈곤과의 전쟁’은 ①복지 ②일자리 ③감시의 3대 키워드로 요약된다. 빈곤에 허덕이는 저소득층을 위해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동시에,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근본적으로 빈곤에서 탈피하도록 하며, 더불어 부정수급자 감시를 강화해 ‘도덕적 해이’를 방지한다는 것이다.

◇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복지’

정부는 먼저 부양의무제 기준을 완화해 빈곤 사각지대를 해소키로 했다. 부양의무제란 수급 대상자의 부모나 자녀에게 재산 및 근로능력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다. 하지만 일률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면 ‘송파 세 모녀’처럼 복지 사각지대를 양산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2018년 10월부터 주거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키로 했다. 올 11월부터는 노인 또는 중증장애인이 포함된 수급자 및 부양의무자 가구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부양의무자 가구에 적용되는 재산의 소득환산율(집, 자동차, 예·적금 등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는 비율. 가령 1억원짜리 집은 월 소득 104만원으로 환산)도 월 4.17%에서 월 2.08%까지 낮춘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20년까지 생계급여는 3만1000명, 의료급여는 3만5000명, 주거급여는 90만명에게 신규로 지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기초연금 인상, 아동 수당 도입 등으로 비수급 빈곤층 규모가 93만명에서 2020년 33만~64만명으로 감소하리라 본다.

그럼에도 남은 비수급 빈곤층은 지방생활보장위원회 개별 심의를 통해 수급자로 최대한 보호하고, 차상위 건강보험 본인부담 경감 확대 등을 통해 의료 보장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밖에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의료급여 보장성 강화, 주거급여 대상 확대 및 지원액 인상, 교육급여 지원수준 인상 등을 추진한다.


◇ 일자리… 직접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일자리 창출을 통한 근본적인 빈곤 탈출도 꾀한다. 한 번 빈곤의 늪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현실에 따른 조치다. 실제 6년 이상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는 가구 비율은 48.4%나 된다. 한 번 수급자가 되면 계속 수급자로 남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일자리 정책은 이런 이들에게 직접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다. 일자리 창출을 제1국정과제로 삼은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도 맞닿아 있다.

정부는 자활일자리를 2020년까지 7000개 확충하고 자활급여를 단계적으로 인상해 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의 자립을 촉진키로 했다. 돌봄·양육 등으로 종일 일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을 위해 시간제 자활근로 등 자활근로 종류도 다각화한다. 또 자활기업을 창업해 독립할 수 있게 지원을 확대하고, 빈곤층을 위한 목돈 마련 및 자립을 위한 자산형성지원 프로그램도 다양화해 향후 9만 가구를 신규 지원할 예정이다.

최악의 청년실업률에 신음하는 청년층의 빈곤 탈출도 돕는다.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마련하는 대학생 등 청년층에 대한 근로소득공제를 확대해 생계보장을 강화한다. 34세 이하의 청년 빈곤층이 일을 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이 금액을 자산형성지원통장(신설)에 적립할 경우 정부가 자립지원금을 매칭해 청년층 자산형성을 돕는다. 

아울러 청년층의 취업으로 가족이 수급자에서 탈락하는 일이 없도록 별도의 가구 보장 기간을 현행 3년에서 5~7년으로 확대하며, 부양비 면제 및 학비부담 경감을 계획하고 있다.

◇ ‘도덕적 해이’ 우려는 부정수급자 ‘감시 강화’로

문제는 능력이 있음에도 정부 지원을 타 가는 부정수급자들이다. 앞서 ‘송파 세 모녀’ 사건 당시 부양의무제 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했던 것도 도덕적 해이에 따른 부정수급 우려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당장 필요한 예산도 수조원대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정부는 부정수급 등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재정 효율화 대책을 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 감시를 강화한다. 이중국적 의심자 등 부정수급이 의심되는 사람들에 대한 정기적 확인 조사를 강화하고,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인 사람에 대해서도 생계급여 지급 기준을 개선할 계획이다.

고소득자 및 고액 자산가 등의 부양의무자에게는 부양비 징수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이밖에 의료적 필요도가 낮은 장기 입원환자를 중심으로 장기입원 연장승인이나 요양병원 장기입원환자 사례관리를 강화하고, 사회복지 시설 및 임대주택 연계 등도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의 종합계획을 통해 비수급 빈곤층 등을 보호하고 빈곤 사각지대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국민의 기본 생활이 보장될 수 있도록 2단계 로드맵인 ‘2020년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마련한다고 전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