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산모가 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뒤 퇴원을 몇 시간 앞두고 사라져버렸다. 산모가 신생아를 버리고 도주했다는 병원 측 신고를 받고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산모 A씨(24)는 7일 광주의 한 병원에서 아들을 출산했다. 9일 오전에 퇴원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이날 오전 3~7시 사이 새벽시간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아기를 놔둔 채 병원을 빠져나갔다. 연합뉴스는 A씨가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낳은 터였다고 보도했다. 병원과 경찰은 A씨가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어 유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2014년에도 병원에서 아들을 낳은 뒤 아기를 버리고 도주한 전력이 있었다. 당시 영아유기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A씨는 이번에 낳은 신생아 외에도 총 3명을 낳았다. 이 중 2명은 아동보호시설에 위탁해 키우고 있으며 나머지 1명은 A씨의 친어머니가 양육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의 아들을 영유아보호소에 보내기로 했다.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도주한 A씨를 검거하는 대로 아동복지법상 영아유기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
◇ 축복받지 못한 탄생… 한 해 302명 버려져
지난해 태어난 신생아 40만6300명(통계청 기준) 중 302명이 축복 대신 버림을 받았다. 109명은 길 위에, 193명은 베이비박스에 버려졌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버려진 아기는 717명이었다. 경찰 통계를 기준으로 한 최소치다. 2013년 말부터 베이비박스 유기는 형사입건에서 제외됐다. 이를 감안하면 유기된 영아는 최대 1401명, 경찰 통계치의 배 가까이 늘어난다.
국민일보과 관련 통계와 판결 등을 분석한 결과 아기 셋 중 하나(50명, 35.46%)는 태어난 당일 버려졌다. 눈도 뜨지 못한 상태였다. 생후 1주 전에 버려진 아이도 90명에 달했다. 열 중 여덟(108명, 76.60%)은 생후 4주, 통상 신생아로 불리는 기간조차 부모 품에서 보내지 못했다.
아이들이 유기된 곳은 야외가 40건(28.37%)으로 가장 많았다. 약수터, 길바닥, 아파트 화단, 폐가 등 다양했다. 생존하기 불가능한 장소에 버려진 신생아들이 다수를 차지했다는 뜻이다. 그 다음이 교회, 절, 베이비박스 등 아이를 맡아줄 것 같은 장소(17.02%)와 병원(15.60%) 순이었다. 음식물쓰레기통이나 쓰레기장에 버린 경우도 3건 있었다.
6년 동안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는 1000명이었다. 2011년 25명에서 지난해에는 193명까지 늘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는 21명이었다. 버린 사람은 누구였을까. 사건이 재판까지 넘어간 69건을 기준으로 피고인 열 중 여덟(62명, 78.48%)은 여성이었다. 남성은 16명에 불과했다.
지난 6년간 경찰에 입건된 영아 유기 피의자 성별을 봐도 358명 중 284명(79.33%)이 여성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미혼모일 가능성이 높다. 베이비박스에 담긴 편지 100통 중 63통은 미혼모가 놓고 간 것이다.
◇ ‘생명’을 버린 죄… 너무 ‘관대한’ 法
엄마는 4년 만에 또 아이를 버렸다. 2015년 윤정연(가명·당시 39)씨는 태어난 지 4시간 된 딸을 병원에 두고 도망쳤다. 처음 저지른 일은 아니었다. 2011년에도 미숙아인 아들을 병원에 놓고 나왔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부랴부랴 아이를 퇴원시켜 다른 곳에 버리기까지 했다. 아이는 아동복지시설로 보내졌고, 정연씨는 벌금 100만원을 냈다.
이번에는 정연씨에게 상습영아유기죄가 적용됐다. 상습범이라 법정 최고형에다 그 절반까지 더 형이 길어지는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정연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비교적 아기의 생명, 신체에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은 산부인과에 아기를 두고 나온 것은 영아유기죄 중 비교적 죄질이 가볍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먹고살기 힘든 데다 생부를 알지 못하는 점도 고려됐다.
국민일보가 2011∼2016년 선고된 영아유기(치사 포함) 1심 판결문 69건을 분석하니 피고인 79명 중 실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11명뿐이었다. 다른 혐의로 함께 재판받은 3명을 제외하면 영아유기죄로만 교도소에 간 사람은 8명, 10.1%였다. 이 중 5명은 다시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끝까지 징역을 산 이는 3명뿐인 셈이다.
기소된 이들만 따지면 10명 중 8명꼴(61명, 77.2%)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선고유예나 벌금형에 그친 이도 있었다. 정연씨처럼 아이를 두 번 버린 엄마도, 화장실 변기 위에 아이를 두고 온 부부도 교도소에 가지 않았다. 부모가 청소년이라 가정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간 경우도 2명 있었다.
최유미(가명·27)씨는 79명 중 가장 무거운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2014년 12월 아이를 낳고 쓰레기봉투에 넣어 공터에 버렸다. 아이는 동사했다. 최씨는 지적장애 3급 장애인이다.
검찰은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최씨를 기소했다. 형량이 징역 5년 이상이다. 법원은 영아유기치사로 죄명을 변경했다. 영아유기는 최고 형량이 징역 2년 또는 벌금 300만원이다. 절도죄(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보다 형량이 적다.
아기를 버린 부모는 경찰에 잡혀도 재판까지 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2010∼2014년 영아유기 사범 344명 중 84명(24.4%)만이 기소됐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영아유기 사건 대부분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하는데 검찰·법원 단계에서 여러 이유를 참작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를 찾는데도 소극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1∼2016년 영아유기 사범 검거 건수는 266건으로 발생 건수(717건)의 37.1%였다.
김정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아유기죄는 형량 자체가 워낙 낮지만 그렇다고 마냥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도 무리가 있다”며 “영아유기를 저지른 이들 중 사회적으로 제도가 잘 구비돼 있었으면 아이를 키웠을 사람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