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가르치고 있는 일본 중학교들이 극우단체들의 협박과 항의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우익들은 위안부 관련 내용이 포함된 역사교과서를 채택한 일본 중학교에 전화와 엽서를 동원한 노골적인 ‘테러’를 지속해왔다고 9일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해당 역사교과서 ‘함께 배우는 인간의 역사(ともに学ぶ人間の歴史)’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관리 등에 직접 관여한 사실과 운영 과정의 강제성을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한 ‘고노담화(河野談話·1993년)'를 소개하고 있다. 이 교과서는 일본 시민단체 ‘어린이와 배우는 역사교과서회(子どもと学ぶ歴史教科書の会)'가 편집한 책으로 도쿄 소재 마나비샤(學び舍) 출판사가 발행했다.
마나비샤의 집계에 따르면 이 교과서를 채택한 중학교는 일본 전역에 모두 38곳이며 이 중 11개 학교가 항의 엽서나 협박 전화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니치신문은 효고(兵庫)현의 사립학교인 나다(灘)중학교의 사례를 들며 이 학교가 해당 역사교과서를 채택키로 결정한 직후인 지난 2015년 12월 집권 자민당 효고현 본부의 질책을 필두로 익명의 항의 엽서가 날아들었다고 전했다.
특히 극우성향 산케이신문이 지난해 3월 19일자 기사를 통해 해당 교과서를 비난하며 채택 학교들의 이름을 공개하자 특정 세력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항의와 협박은 더욱 노골화됐다. 일부 항의 엽서는 발송인으로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사칭한 것들도 있었다.
와다 마고히로(和田孫博) 나다 중학교 교장은 마이니치신문에 “검정 통과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의 이름을 열거해 문제시 하는 신문이 있는 것에 정치적 압력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 학교 교사들도 “교육의 독립성이 위협받는다”고 호소하며 “항의가 계속될 경우 향후 교과서 채택에 영향을 받는 학교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다만 산케이신문이 공개한 학교들 중 올해 역사교과서를 교체한 곳은 없었다.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와 ‘쇼와 육군’ 등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保坂正康)는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현상에 대해 “전쟁으로 돌진하던 쇼와(昭和·히로히토 일왕의 일본식 연호)시대 초기의 분위기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면서 “(일본) 사회 전체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저서들을 통해 일본 군국주의의 태동과 전개를 비판해 온 작가는 “와다 교장의 목소리는 그런 움직임에 ‘지적인 제동(知的な歯止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