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9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을 방문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아픈 것도 서러운데,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것은 피눈물이 나는 일”이라며 “아픈데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를 2022년까지 급여화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4대 중증질환뿐만 아니라 모든 질환을 아우르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밝혔다. 재난적 의료비, 본인부담상한제 상한선 인하 등 저소득층의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정부는 그간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지만 건강보험 보장률은 여전히 60%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가계직접부담 의료비 비율은 3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9.6%) 대비 2배를 넘는다.
현재는 지주막하출혈로 뇌혈관수술을 받은 환자(소득 5분위)가 109일간 병원에 입원할 경우 총 진료비는 7745만원에 육박한다. 이 중 본인 부담금은 2041만원으로 부담이 크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가 밝힌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이 시행되면 이 환자의 본인 부담금은 567만원으로 급감한다. 비급여 부분인 1540만원의 비용이 감소하고, 예비급여가 적용되면서 1002만원이 절약된다. 또 본인부담상한제 조정으로 50여만원을 덜 내게 되고, 재난적 의료비로 417만원을 지원받게 된다.
복지부는 “이번 대책은 이전과 달리 비급여의 점진적 축소가 아니라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를 완전히 해소하는 획기적인 전환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미용, 성형 등 일부를 제외하고 모든 의학적 비급여는 급여화하는 것이 목표다. 다만 비용 대비 효과성이 다소 떨어지는 경우는 본인부담을 30~90%로 차등 적용하는 예비급여로 관리할 예정이다. 예비급여는 3~5년 경과 후 재평가를 거쳐 급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MRI·초음파는 따로 로드맵을 만들어 2020년까지 급여화하기로 하고 남용 방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재난적 의료비도 제도화한다. 현재 4대 중증질환자에 한해 시행되고 있는 재난적 의료비는 질환에 관계없이 소득하위 50%로 지원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소득수준에 따라 의료비가 연간 소득의 10~40%를 넘는 경우에는 비급여 등 본인부담의 50∼60% 수준을 지원한다. 2018년부터는 과도하게 부담이 큰 선택진료는 완전 폐지된다. 폐지에 따른 의료기관의 수익감소는 의료질 제고를 위한 수가 신설, 조정 등을 통해 보상할 계획이다.
내년 하반기에는 1~3인실 상급병실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환자들의 입원 부담을 줄인다. 그동안 상급종합병원 등에서 병실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상급병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1인실은 중증 호흡기 질환자, 출산직후 산모 등 필요한 경우에만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본인부담은 기존(20%)보다 높게 책정할 예정이다. 아울러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확대해 간병비용 부담을 낮출 방침이다.
기존의 비급여 해소와 아울러 새로운 비급여가 생기지 않도록 신포괄수가제 적용 의료기관을 대폭 확대한다. 신포괄 수가제는 기존의 행위별 수가제와 달리 환자가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발생한 입원료 처치료 검사료 약제 등을 묶어서 미리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복지부는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적정 수가 보전, 인센티브 부여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인, 아동, 여성 등 취약계층 의료비 부담 경감 방안도 강화된다. 치매국가책임제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치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정밀 신경인지검사, MRI 등 고가 검사들은 급여화한다. 중증 치매 환자 약 24만명에게는 산정특례를 적용해 본인부담률을 기존 20~60%에서 10%로 대폭 인하한다. 노인 틀니·치과 임플란트도 본인부담률을 50%에서 30%로 줄일 방침이다. 15세 이하의 입원진료비는 본인부담률을 5%로 경감하고, 만 44세 미만 여성은 인공수정, 체외수정 등 난임 시술에 올 10월부터 건강보험을 적용하게 된다. 부인과 초음파는 기존 4대 중증질환자에 한해 건강보험을 적용했지만 모든 여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번 보장성 강화 대책을 위해 2022년까지 총 30조6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특히 올해부터 내년까지 시행 초기에는 신규 재정의 56%를 집중 투입한다. 하지만 복지부는 “건보료 인상은 지난 10년간에 준하는 수준”이라며 “기존 건보료율의 3% 가량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종합계획으로 국민이 부담하는 의료비가 약 18%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비급여 부담률은 64%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1년에 500만원 이상 의료비를 내고 있는 환자도 현재 39만1000명에서 13만2000명으로 66%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