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버릇없는 아이

입력 2017-08-08 14:36
이호분 연세누리정신과 원장

S는 9세 남자아이로 산만하고 너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병원을 찾았다.

혹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다며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짜증을 냈다. 지시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물건을 만지고 놀이를 할때도 무엇 하나에도 집중을 하지 못했다. 질문에도 다소 반항적이고 삐딱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 그는 타고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부모와 조부모 사이에서 일관성 있는 훈육을 받지 못해 버릇이 없고 참을성 없는 아이가 된 것이었다.

S의 아빠는 외아들로 태어났는데 본가는 전형적인 ‘밀착 가족’이었다. S의 할머니는 아들이 하는 일을 뭐든지 알려고 했고, 간섭하려 했다. 사춘기 때 잠시 반항해 보기도 했지만 강한 성격의 어머니를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착한 아들로 지내다가 결혼을 했다. 

S 할머니의 간섭은 결혼을 하자 며느리와 손주에게 까지 이어졌다. S네 김치가 떨어진 것까지 할머니가 다 챙겨 줄 정도였다. 겉으로는 자상한 시어머니였지만 S엄마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한달에 일주일 이상은 할머니가 S의 집에서 지냈다. 할머니가 와계시는 동안에는 할머니 말씀이 규칙이었다. 할머니의 간섭은 아이를 키우는 데에도 적용됐다. 대개의 할머니들이 그렇듯 S의 할머니도 손자에게는 지나치게 허용적이었다. 엄마가 안된다고 하는 일도 할머니 오시면 규칙이 무너졌다. 당연히 S의 부모는 일관성 있게 훈육을 할 수 없었지만 S아빠는 한번도 부모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S 아빠 역시 아직도 부모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이라고 느낄 만큼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휘둘리는 사이에 S는 규범이나 규칙을 익히기 못하고 자제력이 키우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할머니의 위세를 등에 업고 집안에서는 위계도 없이 왕자처럼 행동했다. 이렇게 제멋대로인 아이가 학교라는 사회에 적응할 리 없었다. 집과 다른 학교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니 차츰 위축됐고, 친구들과도 잘 사귀지를 못했다. 

S의 치료는 가계도 그리기부터 시작됐다 아빠가 부모로부터 ‘분화되지 못한 자아’를 깨닫아야 했다. 자신이 어머니의 간섭을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아직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런 문제가 현재 S가 보이는 행동 문제의 원인임을 알아나갔다. 아이의 치료와 더불어 아빠도 독립을 연습해 갔다. 결혼 후에 새롭게 꾸려진 가정의 가장 역할도 연습해야 했다. 아내와 결속하면서.

우리의 가족 문화가 지나치게 정서적으로 밀착되고 간섭적인 ‘밀착 가족’ 경향이 많아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 성인 중에도 S 아빠처럼 그들 자신의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을 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이런 가족 특성이 심하면 자녀들이 성인기에 접어들었을 때 계속 부모에게 귀속돼 '마마보이'나 '마마 걸'로 남아 있거나 반대로 외국으로 떠나거나 가족의 연을 끊고 아예 단절을 시도하는 두 가지 형태의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어느 쪽도 진정한 독립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가족사의 애증이 여기서 비롯된다.

이호분(연세누리정신과 원장,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