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39) 프랑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다. 선거 혁명으로 대권을 거머쥔 뒤 총선에서 의회까지 장악한 젊은 대통령에게 프랑스 국민들이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지난주까지 실시된 주요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마크롱의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은 36~54%에 그쳤다. 지지도 측정방식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지난 5월 대선에서 66%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할 때 현격하게 떨어진 수치다.
프랑스 여론연구소는 이런 결과에 대해 “신임 대통령이 취임 후 이렇게까지 인기가 급격하게 추락한 경우는 1995년 7월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경우를 빼놓고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마크롱은 프랑스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쓰고 사상 처음으로 재선을 포기했던 전임 프랑수아 올랑드보다 취임 초기 더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게 됐다. 임기 말 지지율이 4%대까지 급락했던 올랑드 전 대통령은 취임 2개월 당시 55%의 지지율을 기록한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몰락’ 조짐은 프랑스 언론들이 마크롱을 그리스·로마 신화의 최고 신 ‘주피터(Jupiter·제우스)’로 부르기 시작한 데서도 여실하게 드러난다. 이는 정치권의 이단아가 기존의 판을 깨고 권좌에 오른 뒤 점점 더 권력에 굶주린 모습을 보이는데 따른 여론의 풍자다. 정치 경험이 없다시피 일천한 미숙한 정치인이 너무 거만하다는 비난도 잇따른다.
마크롱의 ‘독불장군’ 스타일은 지난달 3일 파리 베르사유궁에 상·하원을 소집해 장장 90분에 걸친 국정연설을 한 이후 ‘수면 왕(Le Roi Sommeil)’이라는 새로운 풍자를 만들기도 했다. 프랑스 왕정 사상 가장 강력한 전제군주인 루이 14세의 별칭 ‘태양왕(Le Roi Soleil)’의 태양과 발음이 비슷한 단어 ‘수면(Sommeil)’을 이용한 패러디다. 마크롱 대통령이 절대왕정의 상징적 공간인 베르사유 궁에서 왕과 같은 면모를 선보였지만 일방적이고 지루한 연설로 프랑스 전체를 잠들게 했다고 비꼰 것이다.
실제로 마크롱 대통령의 추락을 설명하는 주요 원인으로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 우선적으로 지목되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부터 프랑스 노동계와 마찰을 빚어 온 마크롱은 노동·세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화 상대와 타협하지 않고 참모진마저 찍어누르는 듯한 권위적 태도를 보여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특히 국방예산 삭감을 놓고 피에르 드빌리에 합참의장이 마크롱 정권과 대립을 거듭하다 지난달 19일 전격 사임하자 마크롱의 ‘제왕적’ 행보에 대한 비판 여론은 더욱 고조됐다.
마크롱은 미국·러시아 정상과의 회담을 통해 강한 인상을 남기며 ‘스트롱맨 조련사’로까지 불렸지만, 지난 리비아 평화협상 중재과정에서 사태 해결을 주도한 이탈리아의 의견을 무시하는 등 외교적 미숙함을 드러내 성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일각에선 마크롱의 ‘소통 부재’가 지지율 하락의 또 다른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이 언론과의 만남도 선별적으로 응하고 있다는 볼맨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마크롱은 전통적인 바스티유 데이 TV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마크롱 대통령은 부인 브리지트 여사를 위해 세금으로 공식활동을 지원하는 미국식 ‘퍼스트레이디' 제도를 도입하려다 거센 역풍까지 맞고 있다. 24살 연하 대통령 남편의 계획을 반대하는 청원운동에 현재까지 15만명 이상이 동참한 상태다.
한편 마크롱의 가족들과 측근들은 휴가를 가지 않겠다고 공언한 대통령을 설득해 파리 근교로 며칠이라도 휴가를 다녀오게 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짧은 휴가를 다녀온다 해도 마크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힘든 9월이다. 강경파 노동조합들도 그의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거리 투쟁을 이미 예고해 둔 상태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