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성서한국전국대회가 2일 충남 건양대 논산창의융합캠퍼스에서 ‘청년이 묻고 소명이 답하다’는 주제로 개최됐다. 이번 대회에는 소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품은 500여명의 기독청년들이 참석했다.
대회 주강사인 김형원 성서한국 이사장은 하나의교회 담임목사,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 월간 복음과상황 발행인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그는 현재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동시에 기독교적 대안 실천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김 이사장을 3일 오후 건양대 인문학관에서 만나 ‘소명’을 주제로 삼은 이유와 성서한국이 마주한 과제 등에 대해 물었다. 그는 우선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소명이라는 개념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나 칼뱅 덕분에 성직자만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게 아니라 모든 직업 종사자가 제각기 소명을 받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된다. 즉 모든 사람의 삶에 소명이 있다는 깨달음이 사회 저변에 퍼진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오히려 종교개혁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게 김 이사장의 지적이다. 그는 한국교회가 소명에 대해 균형 잡힌 접근을 하지 못한 게 문제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소명을 성서한국대회 주제로 선정한 이유는.
김형원 이사장=종교개혁 500주년 맞아서 중요한 화두가 뭘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소명이란 키워드에 집중했다. 마르틴 루터나 칼뱅이 얘기했듯이 중세 이전 소명은 사제 중심주의였다. 성직자로 사는 것만 소명으로 여겼다. 하지만 종교개혁은 이를 보편화시켰다. 모든 직업이 다 소명을 갖고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목사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교회가 늘고 있다. 이 부분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성서한국이 지금껏 해온 대로 소명이란 주제가 삶의 변화, 사회의 변화, 세상의 변화와 맞닿아 있는 적합한 주제라고 봤다.
-문제되는 현상의 사례는 어떤 게 있을지.
=소명이라면 목사나 선교사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통념을 깨부숴야 한다. 또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전혀 소명 받은 사람으로 살고 있지 못한 현상도 예로 들 수 있다. ‘장로 수난 시대’라는 말이 있다.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켜 언론에 나오는 사람 중 교회 장로가 많다. 세상에서 소명을 받은 자라는 의식이 없이 살아가는 한국교회 모습의 단면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하게 구별돼 다르게 살아야 하는데 그 의식이 없어 벌어지는 일이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서 세상에 보냈다는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게 지금 한국교회 전반적인 모습이다.
-장로 수난 시대라고 했는데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
=한국교회 소명론은 그동안 고지론의 측면이 강했다. 쉽게 말하면 다니엘이나 요셉처럼 영향력 있는 사람이 돼야한다는 식이다. 이런 얘기만 줄곧 반복했기 때문에 장로가 됐지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나온 거다. 뉴스에 고개 숙이고 나온 기독교인들 다 교회에서 인정받고 장로나 집사가 된 것 아닌가. 사회에서 떵떵거리는 사람을 교회에서도 똑같이 인정해주고 있다. 정작 믿음을 제대로 검증하진 않은 거다.
오히려 믿음은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가로 검증돼야 할 필요가 있다. 디모데전서나 디도서에 보면 직분자를 세우는 기준이 나온다. 그중에 교회 내에 관련된 건 ‘가르치기를 잘하며’(디모데전서 3장 2절)라는 구절뿐이다. 나머지는 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관련된 내용이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장로나 집사, 권사 세우는 기준을 보라. 그런 것들 안 따진다. 교회에서 헌금 얼마 내는지, 봉사 얼마나 하는지 이걸로 직분자 세우고 있지 않나. 장로 수난 시대는 한국 교회가 만든 결과다. 결국 교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또 소명을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제 한국교회에서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직분자 세우는 기준이 성경에 명확히 나오는데 그것도 순종하지 않고 있다. 교회가 세상을 너무나 닮아가고 있다. 세상과 같아지면 교회는 결국 소멸하게 된다. 무너지는 것이다. 심지어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이단도 자기들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병역거부를 하면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있다. 한국교회 현주소가 어딘지 점검해야할 시기다.
-이번 성서한국 설교 내용은 어떻게 되는지.
=첫날인 2일 저녁집회 때는 거룩의 소명에 대해 설교했다.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은 내가 원하는 것이나 세상이 요구하는 것에 맞춰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두 가지 면에서 문제가 생긴다. 하나는 세상에서 내가 편하게 살고 싶고 내 욕망대로 살고 싶은 욕구가 하나님 뜻과 어긋날 경우다. 이 때 욕심을 포기하고 하나님 뜻대로 따라가는 게 맞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손해를 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을 도와야 할 상황에는 그렇게 하는 게 맞지 않냐는 거다.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 손해 볼 수도 있고 어리석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게 옳다는 얘기를 했다.
세상이 얘기하는 주된 흐름이 있다.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 출세한다 편하게 살 수 있다 등등. 사실 정말 그게 맞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나오듯 공중권세 잡은 자들의 음모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다르다면 저항해야 한다. 때론 지금 있는 곳에서 나와야할 경우도 생긴다.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싸워야 할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선호하는 직업을 가지는 게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세상이 좋다고 말하는 걸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문제라는 뜻이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내가 이걸 왜 하느냐고 묻는 게 중요하다. 일의 종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걸 하느냐는 동기가 중요하다. 내가 지금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길을 가고 있는지 질문해보라는 거다.
-나머지 이틀 설교 내용은 어떻게 되나.
=둘째 날 주제는 일상적 소명이다. 가정생활이나 직장과 학교 등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만약 내가 아버지라면 가정에서 아버지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에서 아버지로서 할 일을 잘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거대한 뭔가를 하라는 게 아니다. 부모면 부모답게 자녀면 자녀답게 역할을 잘 감당하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소명을 얘기하면 목사나 선교사 같은 큰일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작은 역할을 감당하는 게 소명이다.
셋째 날 주제는 비전적 소명이다. 일상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부르실 때가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가슴에 품고 그것을 위해 좀 더 시간을 내고 비용을 투자하면서 애쓰는 경우다. 예를 들어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저녁이나 주말에 시간을 내서 장애인시설에 봉사하러 갈 수 있다. 정치나 사회, 경제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도 포함된다.
한국 교회에선 비전적 소명만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거룩의 소명과 일상적 소명이 기초가 돼야 비전적 소명도 얘기할 수 있다. 이 세 가지의 소명이 균형 잡힌 삶을 교회가 가르쳐야 한다. 목사인데 가정생활이 엉망이라거나 장로인데 사회생활을 어지럽게 하는 모습은 소명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교회 안에서만 잘하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게 문제다.
-성서한국 2002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5년째다. 성서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도전 과제는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이 무너지고 있다.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청년이 무너진다는 건 첫째 교회 내 청년숫자 감소와 둘째 청년들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 두 가지를 뜻한다.
청년 숫자 감소는 심각한 문제다. 성서한국 운동도 기본적으로 청년운동이기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번 대회만 해도 2년 전 대회에 비해 200명 정도 인원이 줄었다. 성서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선교단체들의 집회도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청년들의 동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과제다. 어떻게 청년들의 힘을 북돋아줄 수 있을지 고민이다. 최근 국내 정세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정치 경제 교육 등의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사회선교를 표어로 내세웠는데 이걸 어떻게 적용해 나갈 지 고민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거대 담론보다는 미세하지만 현실적인 이슈들을 과제로 삼고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문제의식이다. 최근 마을공동체나 지역사회운동에 대한 얘기들이 계속 나온다. 이쪽 분야로 청년들을 키워야 하지 않겠냐는 고민을 하고 있다.
거대한 사회 담론을 다루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시대를 맞이해서 구 단위나 마을 단위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 예전엔 큰 이슈만 가지고 얘기해했는데 조금 더 작은 이슈를 현실적으로 잘 다룰 수 있냐가 고민이다. 운동 방향의 전환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확장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동안 성서한국이 정치나 경제, 통일 등 거대한 이슈만 다룬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현실에 밀착한 문제들을 다룰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이건 성서한국 관계자들이 다 같이 고민해야할 과제인 것 같다.
과거에는 ‘탑-다운' 방식으로 사회 변화가 일어났다. 위에서 안 변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아래서부터 변하는 ‘다운-탑' 방식도 있고 위계가 없는 수평적 방식도 생겼다. 담론 수준에 따라 접근하는 주체들이 다양하게 생겨나고 있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주체가 확장된 것이다. 예를 들어 통일 운동하는 곳은 여전히 거대 담론을 다룬다. 교육 문제 같은 경우에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같은 단체는 교육정책 문제를 다룬다. 또 ‘좋은교사운동’ 같은 곳은 현장에서 교사나 학부모 문제 같이 구체적인 현실 문제를 다룬다. 정리하자면 성서한국이 이제는 다양한 방식의 역량을 요구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위로만 눈을 뜨고 있다가 이제는 위와 중간, 아래까지 모두 살펴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성서한국의 주요 사역 대상이 청년이라고 했는데 이들 상황 지금 희망적이라고 볼 수 있나.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분명 변화된 상황이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 같은 경우 마을 살리기나 마을공동체 운동에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막상 돈을 받아서 일을 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청년들도 저게 직업이 될까 돈이 될까 하는 생각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다만 시간이 5년 10년 이렇게 지나면 점차 도전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청년들이 지금은 이게 일이 되는 건지 의문을 갖겠지만 성공 사례가 나오면 이제 정부기관이나 교회에서 지역 일꾼들 키우는 데 초점 맞추자고 나서면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신학교에서 목회할 사람만 키우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 활동가를 키워내는 식의 변화가 가능하다. 지역 사회 활동이 활발해지면 이제는 단순히 전도지 들고 나가서 전도하는 방식이 바뀔 거다. 마을에서 사람들과 만나 필요한 것 채워주면서 사람들이 교회와 관계 맺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러면 신학교 교육내용도 달라진다. 어느 지방 신학교에서는 지역 활동가를 키워내는 코스를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변화로 본다. 꾸준히 하면 청년들 잘 키워낼 수 있다고 본다. 지역사회 활동에 뛰어든 몇몇 교회들이 있다. 교회에서 지역사회 섬기는 프로그램 만들고 신학교가 제휴하고 이런 식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좋겠다. 이런 활동은 당연히 젊은이들이 더 잘한다.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빠르고 감각도 있다. 성서한국 또한 그런 활동가들을 키워내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더 나아가 개교회와 연합해서 일할 수 있는 부분도 염두에 두고 있다.
예전에는 단순히 시혜차원의 봉사만 했다. 봉사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거기에만 머물면 안 된다는 거다. 지역사회 사역을 하다보면 분명히 제도적 장애물을 마주하게 된다. 이때 제도의 변화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시도할 수도 있다. 제도를 잘 고치면 소모적으로 반복되는 봉사는 없앨 수도 있다. 성서한국이 개인의 시혜차원이 아니라 더 넘어서 구조적 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키워내는 일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근원적인 사회 변혁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구체적인 봉사와 섬김 그리고 근원적인 변화는 늘 같이 가야 한다.
성서한국은 지역사회 활동가들을 연대하고 네트워크 만드는 역할도 염두에 두고 있다. 지역 교회들이 자기 지역을 섬기는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정부기관이나 복지시설 같은 곳도 교회를 선호한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섬기려는 마음가짐과 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교회가 너무 목적지향적으로 전도에 혈안이 되면 안 된다. 자연스럽게 지역을 섬기다보면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각 지역에서 우리 동네엔 무엇이 필요할지 교회가 잘 고민하면 좋을 것이다. 성서한국을 통해서도 지역사회 활동 노하우와 정보를 공유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 성서한국의 로드맵은 뭔지.
=로드맵을 따로 갖고 있진 않다. 성서한국은 연대단체이지 특정 리더의 지시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단체는 아니다. 로드맵이나 청사진으로 내세울 만 한 건 없다. 앞으로 성서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는 이번 성서한국전국대회가 끝나고 관계자들이 같이 모여서 평가 및 논의를 한 다음 어느 정도 윤곽이 나타날 것이다.
-한국의 기독 청년들은 3·5·7포세대로 상징되는 한국 청년 세대의 절망과 사회로부터 지탄 받는 한국교회 구성원으로서의 절망감을 모두 경험한다. 뭔가 시도하기 엄두조차 나지 않는 상황이다.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자면.
=2015년 성서한국전국대회 주제가 ‘공동체’였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주제였다고 생각한다. 마을 공동체는 이미 일반 사회에서는 필요를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사회에서 기존에 있던 공동체가 다 해체됐다. 사실 교회가 공동체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사실 청년들에게 개인적으로 희망을 제시하려니 할 말이 없다. 저희 교회 청년 비율도 높은 편이다. 목회한지 14년 정도인데 중간에 변화가 있었다. 공동체적인 교회로 가야한다는 의식의 공유였다. 당시 중요한 인식이 ‘삶의 공동체’라는 가치였다. 제아무리 공동체라는 단어를 말해봐야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정말 중요한 건 모든 걸 함께하고 나누고 책임져주는 삶의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다. 누군가 굶거나 직업이 없을 때 공동체가 책임지고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이 부분을 복지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의존하고 있는데 교회가 이걸 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 중 누군가 실업자가 됐는데 가족이라면 가만히 있겠나. 그 사람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애쓰고 찾아보기도 하고 그렇게 하지 않겠나. 교회가 공동체면 당연히 이런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의 경제적 상황이나 집안 상황 등을 공유해야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청년희년기금’ 같은 게 있다. 교회가 기금을 마련하고 청년들이 뭔가 해보겠다고 하면 지원해주는 식이다. 국가에서 스타트업 기업에 창업기금을 주는 걸 떠올리면 된다. 교회에서 “넌 우리 가족이야. 네가 시도하면 우리가 지원해줄게.” 이런 식으로 가는 거다. 이게 실제적인 공동체다.
모든 청년들이 다 돌봄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다. 대기업에 가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교사가 되는 청년들도 있다. 다만 또래 청년보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경우 다른 청년을 도울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이런 청년들이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혼자 잘나서 돈을 번 게 아니라 빚진 자라는 마음을 갖도록 도와줘야 한다. 친구 중에 가정환경이 안 되거나 능력이 부족해서 고생하는 경우 함께 책임지고 돌보는 형제의식을 갖는 게 삶의 공동체란 얘기를 계속 해야 한다.
이건 사실 현 사회구조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간다. 내가 얻는 모든 것은 내 노력으로 이뤄졌기에 자신이 다 가져도 되는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개인이 가진 것 중에 빚지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재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가정이 좋아서 교육을 잘 받았으면 그것도 노력과 관계없이 환경이 주어진 것이다. 순전히 내 노력으로 얻는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모두가 빚진 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게 삶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기본 철학이다.
386세대들은 혜택을 많이 봤다. 이들이 사실 가진 것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고생 많이 했다. 그렇지만 386세대는 고생한 것에 대한 결과를 충분히 얻었다. 지금은 고생한 만큼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게 문제다. 옛날 사람들 고생 많이 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요즘 세대는 예전보다 고생은 덜 하지만 그 결과가 너무 없어서 박탈감을 느낀다. 앞선 세대가 좀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이게 교회로부터 먼저 이뤄져야 한다. 교회에서 안 되면 세상에서 얘기할 수도 없는 것이다.
모든 교회 기성세대가 자신이 가진 것 조금씩 내놓기 시작하면 청년 주거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된다. 희년기금을 만들어 청년들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교회에서 다양한 지원과 나눔이 있으면 청년들이 교육을 받으면서 직업을 갖게 될 수도 있고 사업도 할 수 있게 된다. 청년들이 이같은 변화를 봐야 교회가 살아있는 곳이라는 걸 깨닫게 될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이 배운 복음의 가치와 교회의 현실이 일치할 때 교회를 떠나지 않게 된다. 사실 교회가 복음의 기본 정신을 상실했기 때문에 청년들이 교회 떠나고 있다. 교회가 진정 그 모습을 회복하면 가나안 성도가 나올 이유가 없다.
-청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은 어떤 게 있을지.
=청년들 차원에서도 공동체적 삶을 훈련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완전히 개인화됐다. 다 혼자 놀지 않나. 개인주의적 성향을 스스로 깨부수면서 청년들끼리 공동체성 회복하는 게 필요하다. 그들끼리도 서로 도울 수 있다. 혼자 굶는 것보다 둘이 굶으면 좀 더 버틸 만하지 않나. 청년들 스스로와 교회 차원 모두에서 변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청년들이 좀 더 빨리 각성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들이 자꾸 도전하다보면 교회에서도 의미 있게 반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 청년전도사나 사역자들이 깨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 새로운 시도도 하고. 가교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다.
김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40분간 진행됐다.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한국 교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에서 성서한국대회에 참석한 대학생들 못지 않은 열정이 느껴졌다. 그의 최근 관심사는 마을공동체와 청년희년기금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 김 이사장은 현장 활동가들의 발표를 들으러 간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성서한국은 2002년 성서한국 수련회로 시작해 올해 여덟 번째를 맞았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대답’이라는 표어로 사회선교운동을 시작한 지 15년이 지났다. 앞으로도 성서한국이 기독청년들의 영적 갈증을 채우고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 활발히 활동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