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악법’의 부활… 트럼프 이민법 있었으면 지금의 트럼프도 없다?

입력 2017-08-04 17:31 수정 2017-08-05 00:03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개척 당시 미 대륙 횡단철도 건설에 투입된 중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선로를 연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미 의회도서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 중인 새 이민정책을 둘러싸고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또다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합법 이민자들에게도 영어를 잘 하거나 미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면서 사실상 비영어권 이주 노동자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외국인 노동자들의 제한 없는 유입이 “(미국에) 가장 큰 타격을 입혔다”고 주장하며 “느슨한 이민법은 우리 국민과 노동자들에게 불공평한 것”이라고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왔다.

이런 식으로 심각한 편견에 치우친 트럼프의 정책은 미국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은 '중국인 배척 법(Chinese Exclusion Act)'을 연상시킨다고 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실제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트럼프의 배타적 관점은 1882년 도입된 미국 최초의 이민 제한법인 '중국인 배척 법'의 도입 근거와 유사하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1848~1855년 미국 서부개척 당시 캘리포니아 '골드러시(Gold Rush·금광 개발)' 기간 동안 북미에 처음으로 유입됐다. 이들 중 1만4000여 명이 미 대륙 횡단철도 건설에 투입돼 수많은 이들이 작업 중 목숨을 잃어가며 당시로선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횡단철도의 개통(1869년 5월 10일)을 실현시켰다.

금이 풍부하고 노동력이 부족할 때는 중국인들이 환영받았지만, 이후 1870년대 미국의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아시아인들에 대한 적개심이 팽배해졌다. 일부 백인들은 철도 건설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증오를 드러냈고, 극심한 인종차별주의로 중국인 살해 사건까지 빈번해졌다.
‘중국인 배척 법(Chinese Exclusion Act)’을 묘사한 당시 만평. [미 의회도서관]

1880년경 30만 명까지 늘어난 중국인 이민자들이 캘리포니아 인구의 10분의 1에 육박하자 미 의회는 2년 뒤 ‘중국인 배척 법’을 승인해 중국인의 노동이민을 금지시켰다. 이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국인들은 자율 정부 구성에 필요한 두뇌의 용량이 부족하다”와 같은 인종 비하 발언들까지 쏟아져 나왔다.

전형적인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의미)’격 악법이 1943년 폐지될 때까지 61년 동안 미국은 중국인 노동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WP는 이주 노동자들을 ‘값싼 노예’로 부려 먹고 팽개쳐버린 당시의 작태가 트럼프의 새 이민법을 통해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1896년에 촬영된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의 백합 판매 좌판의 모습. [미 의회도서관]

한편 이민 악법의 ‘부활’을 추진하는 트럼프 행정부 내 주요 인사들의 이민 가족사를 되돌아 볼 때, 새 이민법을 당시에 적용했더라면 그들의 조상들도 미국에 발을 들일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WP가 추적한 ‘이민 이력'에 따르면 16세에 독일에서 미국으로 온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의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트럼프는 미국에 올 당시만 해도 영어를 구사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가문(The Trumps)’ 책의 저자 겸 트럼프의 전기 작가 그웬다 블레어는 “프리드리히 트럼프의 이민기록과 인구조사자료를 보면 영어 구사 여부를 묻는 문항에 ‘할 수 없다(none)'라는 답변이 기재돼 있다”고 증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트럼프에 대한 인구조사 자료. [워싱턴포스트 캡처]

트럼프의 할아버지는 1885년 독일 칼슈타트에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는 뉴욕에서 영어를 배운 뒤 웨스트코스트로 이주해 식당을 운영했고 이후 숙박업도 시작했다.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미국행을 택한 프리드리히 트럼프는 미국에서 큰돈을 모은 뒤 고향으로 금의환향해 이웃에 살던 엘리자베트 크리스트와 결혼한 뒤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아내의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다시 독일에 귀국했다 병역 회피 혐의로 강제추방된 뒤, 미국에 완전히 정착해 트럼프 가문이 본격적인 부동산 재벌로 성장하는 기반을 닦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내 반(反) 독일 정서가 확산됐을 때 트럼프 가문은 한동안 스웨덴계 혈통을 사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어머니 메리 맥러드도 스코틀랜드 이민자 출신으로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맥러드가 18세에 미국에 도착했을 당시 스코틀랜드 겔틱어 밖에 구사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의 부인 멜라니아도 슬로베니아 태생 이민자로 한때 특유의 동유럽식 영어 액센트로 조롱거리가 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참모들 중에도 이민자 가정 출신이 많다. 당장 새 이민 정책의 설계자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수석 정책고문의 증조할머니 새러 밀러는 1910년 인구조사(센서스) 자료에서 이디시어(중부 및 동부유럽 출신 유대인이 사용하는 방언)만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켈리엔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의 증조할아버지 파스칼 롬바르도 역시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으로 미국에 이주했을 당시 이탈리아어만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와 있다. 트럼프의 ‘복심’으로 통하는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고조할아버지 역시 바바리아(독일 바이에른주)에서 미국으로 건너 온 이민자로 영어를 할 수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