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중 깨어나는 '마취 각성'…의료사고 미리 막는다

입력 2017-08-04 09:54 수정 2017-08-04 10:25
수술중 각성을 다룬 영화 '어웨이크'

‘수술 중 각성(intraoperative awareness)’은 수술 중 마취가 풀려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를 일컫는 의학 용어다. 배를 가르고 메스로 장기를 적출하며 다시 꿰매는 과정의 육체적 고통을 그대로 느껴야 한다면, 몸은 마비돼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호소할 수 없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국내 영화 '리턴'과 미국 영화 '어웨이크'가 이런 수술 중 각성을 다뤄 주목을 받았다.
 
수술 중 각성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어디일지, 의식과 무의식의 수준을 어떻게 숫자로 정량화할 수 있을지 등의 의문을 던진다. 이 오랜 질문의 답을 '물리학'이 내놨다.

 마취가 되거나 깰 때 의식과 무의식 간 나들목의 경계와 깊이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수술 중 각성' 같은 마취로 인한 의료사고를 미리 방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은 물론 뇌의 신비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됐다.

 포스텍 물리학과 김승환, 정우성 교수팀은 서울아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 노규정 교수팀과 공동 연구에서 다채널 뇌파의 상호작용 분석을 통해 마취 중 의식 소실과 회복의 신경과학적 메커니즘을 정량적으로 밝혀냈다고 4일 밝혔다. 
 특히 전신마취 환자 뇌파의 다양한 리듬의 시간적 변화를 분석해 마취에서 회복되는 과정의 의식 깊이와 수준을 수치화하는 데 성공해, 보다 정확한 모니터와 대응이 가능하게 됐다.
포스텍 김승환 교수

 포스텍 물리학과 이헌수 박사 (현 미시간대 재직)는 “물리학의 엔트로피(무질서도) 개념을 도입해 뇌파 채널 간 위상 관계 변화의 다양성을 정량적으로 측정했다”며 “뇌 연구의 기존 방법론에서 더 나아가 마취 심도까지 연결한 것은 처음으로 이미 알려진 지표보다 더 정확하게 마취 후 의식 소실 과정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96명의 환자에게 마취제를 이용한 임상 실험을 한 결과, 마취 후에 환자의 뇌파가 엔트로피 지표에 맞게 현격하게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으며 또한 다른 투약 실험에서도 엔트로피 지표와 의식 수준이 밀접하게 상호 연관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에 기초해 엔트로피 지표를 활용한 마취 심도 진단 장비를 포스텍과 서울아산병원 및 국내 기업이 현재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노규정 교수



김승환 교수는 "기초연구로부터 시작해 응용개발 및 임상까지 우리 고유의 기술에 기초한 국산 장비로 새 의료시장을 개척할 길이 열렸다”며 “후속연구를 통해 뇌의 신비에 계속 도전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뇌과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휴먼 브레인 맵핑’ 9월호에 발표될 예정이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