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머리카락과 눈썹을 뽑는 아이

입력 2017-08-01 09:08
이호분 연세누리정신과 원장
P(가명)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는 행동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P는 눈썹을 뽑는 행동을 하더니 차츰 심해져서 머리카락 까지 뽑기 시작해 머리 속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을 정도여서 애써 머리핀으로 가려 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신경이 쓰이는지 머리 매무새를 만지느라 정신이 없고 산만해 보였다. 표정이 침울하면서도 긴장돼 있어 아이다운 생동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P의 긴장한 표정이 놀라울 만큼 엄마와 닮아 있었다.


사실 P의 엄마는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가정을 잘 꾸려 나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아이를 먹이는 것도 건강을 생각해 유기농 만을 고집했고, 아이를 늘 깔끔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입히려 했다. 집안도 늘 정갈하게 정리 되어 있어야 하고 한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못했다. 남편에게 최선을 다해 내조를 해 나름 행복한 가정을 일구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은 심각한 외도 상태는 아니라고 하였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용서를 구하였지만 의심은 계속됐다. 주변에서도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했고 본인도 자신의 의심이 지나치다고 느끼고 그런 자신이 싫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깨어진 신뢰가 회복되지는 않았다. 아빠는 나름대로 속죄하는 마음으로 노력을 했지만 남편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찬 아내의 돌발적인 분노 폭발나 짜증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부부간에 다툼이 잦았다.

P는 부모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며 지냈다. 작은 일조차 엄마의 지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하게 야단을 맞았다. 엄마는 숙제 등 작은 일에도 완벽할 것을 요구했고, P도 차츰 분노가 쌓여갔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헤아릴 만큼 부모가 여유 있지 못했다. 자신의 감정을 감당하기에도 벅찼다. 아이는 감정 배출구를 찾지 못하니 결국 손톱 뜯는 행동을 보이고 눈썹, 머리카락을 뽑기 시작하게 됐다. 알고 보니 P의 분노는 친구에게도 표출되고 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어 친구관계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불안하고 긴장되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산만해졌다. 공부도 노력만큼 성과가 없었다.

아이치료와 더불어 부부 상담이 함께 진행됐다. 엄마는 어린시절 차가운 친정어머니에게 자주 거절을 경험 했고 버림 받은 두려움을 항상 갖고 있었는데,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다. 현재 아내의 상태와 어린시절 아내의 아픔을 연결해 보면서 아빠는 아내를 좀더 깊히 공감할 수 있었다. 배우자의 외도는 사실상 ‘애착의 파괴 행위’로 쉽사리 관계가 회복되기는 힘들다. 한쪽의 희생으로 겉으로는 이해하고 넘어가는 듯이 보이는 경우에도 마음속의 해결되지 않는 분노감을 평생을 따라다닌다. 특히 피해당한 배우자가 어린시절 불안정 애착을 경험한 경우엔 더운 치명적이다.

엄마는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외골수로 흐르던 생각의 균형도 조금씩 되찾아 갔다. 아빠는 아내를 감정적으로 보살펴 주고, 아내의 의심을 상쇄할 만큼 상대에 대한 배려했다. 차츰 여유를 찾은 엄마는 자신이 아이의 수준에 맞지 않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힘들게 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P의 눈썹 뽑기와 머리카락 뽑기는 사라져갔다.

이호분(연세누리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