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국 제재 강화에 맞불… 미국은 대북 제재 관련 대러 제재까지

입력 2017-07-31 17:51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뉴시스]

러시아가 미국의 추가 제재에 맞불을 놓으며 양국 간의 외교갈등이 보복전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러시아 방송 통합 인터뷰에 등장해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려 한 댓가로 상당수 미국 외교관들이 러시아를 떠나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CNN방송 등 미국 언론들은 푸틴 대통령이 “그것(외교관 추방)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언급을 전하며 러시아가 대러 제재를 강화하려는 미국에 강공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앞서 미국 의회는 지난 27일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사일 개발 등을 이유로 러시아와 북한, 이란에 대해 경제제재를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1000여 명의 미국 외교관과 기술직 요원 등 외교 관계자들이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다. (그 중) 755명이 러시아에서의 활동을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은 이어 “우리도 아무 대응 없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말로 맞제재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러시아 외무부도 이날 미 국무부에 9월 1일까지 러시아 주재 외교 관계자의 숫자를 미국 주재 러시아 외교 관계자의 숫자와 정확히 맞춰 줄 것을 요청했다. 앞서 러시아 외교 당국은 지난 28일 성명을 통해 “미국 하원과 상원이 대러 추가 제재안을 통과시킨 데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 외교관 무더기 추방과 미국 외교자산에 대한 압류를 실시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러시아의 ‘으름장’이 현실화되면 모스크바 미국 대사관과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린부르크, 블라디보스토크 미국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는 미국 직원들의 숫자는 455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러시아의 기습적인 외교 공세에 미 국무부는 같은 날 “유감스럽고 부당하다”라는 반응을 내놓으며 “(외교 관계자 숫자) 제한이 가져올 영향과 미국 정부의 대응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이번 조치가 결국 러시아의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표적인 ‘러시아통’으로 칼 레빈 전 상원 군사위원장의 보좌관을 지낸 에블린 파커스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업과 유학, 관광 등을 위해 미국 외교 관계자들과 접촉해야만 하는 러시아인들의 고충을 이유로 들며 이번 조치의 효과는 미지수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과 불법적으로 거래해온 러시아 기업과 관계자에 대해 금융제재까지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양국의 갈등이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미국 정부는 대북 제재 강화의 일환으로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무역회사들을 제재할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31일 보도했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제 속에도 지난 1~5월 러시아의 대북 수출은 4800만 달러(약 538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400만 달러(약 269억원)보다 두배나 늘어났다.

  북한과의 교역에서 새로운 ‘밀월 관계’에 접어든 러시아는 앞서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에 대해 지속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아닌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라고 ‘평가 절하’해 왔고, 유엔의 제재 결의 과정마다 북한을 비호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이에 일각에서는 북한의 ICBM급 미사일 개발을 초강경 대북 제재와 선제타격의 근거로 여기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북한 미사일을 저평가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 [ABC방송 캡처]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도 30일 미국 ABC방송에 출연해 “우리는 이(대북 제재 결의)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 결의가 핵무기 확보와 미사일 개발 분야에서 북한의 불법적 활동을 중단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조치와 북한 경제를 초토화시키는 조치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응징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추가제재 결의에는 입장을 함께하지만, 제재의 강도가 북한을 고사시킬 정도가 되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랴브코프는 차관은 이어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기까지는 아직 여러 해가 걸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현재 그들(북한 정권)이 시험하고 있는 것들은 준비에만 몇 개월이 걸리는 아주 ‘원시적인 장치’들이며 이는 단순히 전선과 부수적 장치들을 조합한 것으로 미사일에 탑재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북한 ‘화성-14'형 미사일 2차 시험발사 장면. [조선중앙TV 캡처]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