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안보리 대북 결의안,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 中이 행동하라"

입력 2017-07-31 08:04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31일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며 이번 주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CBS 방송이 유엔주재 미국대표부가 북한 관련 안보리 긴급회의를 요청했다고 보도하자 사실이 아니라며 이 같이 말했다.

헤일리 대사는 성명을 통해 “북한은 이미 수많은 유엔 결의안을 위반하고 있다”면서 “북한에 중대한 압박이 되지 못하는 결의안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의 대북 결의안은 없는 것보다도 못한 상황이 됐다. (결의안은) 거꾸로 국제사회가 진지하게 대처할 생각이 별로 없다는 메시지를 북한의 독재자에게 전달하는 꼴이 돼버렸다”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중국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헤일리 대사는 “중국은 이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며 “대화의 시간은 끝났다”고 말했다. 헤일리 대사는 트위터를 통해서도 “북한과의 대화는 끝났다. 중국도 자신이 행동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에도 대북 압박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같은 발언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2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후 중국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억제하지 못한 것에 책임을 물어 무역과 연계한 대중 강경 조치를 시사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중국에 매우 실망했다. 중국은 우리를 위해 북한에 대해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그저 말 밖에 안 했다”며 분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놓고 중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두 번째다.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지난달 사망한 직후 “중국의 노력은 아무 효과가 없었다”고 처음으로 중국을 비판했지만, 북한의 두 번째 ICBM 발사 후 비난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바보같은 미국 지도자들은 중국이 무역에서 한 해 수천억 달러를 벌도록 했지만, 더 이상 이런 일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기간 중 막대한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환율조작국 지정과 고관세 부과 등 강경 조치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취임 이후 실제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이어 “중국이 나서면 이 문제(북한)를 쉽게 풀 수 있다”고 덧붙여 보다 적극적인 중국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기 위해 최근 미 상·하원을 모두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한 대북 제재법에 조만간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금지와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 등에 대한 제재 등을 담고 있는 이 법이 발효되면 중국을 겨냥한 미 행정부의 후속 조치가 따를 수 밖에 없다.

미국은 이미 중국을 최악의 인신매매국으로 지정하고, 중국 지도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고, 중국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 순찰을 강화하는 등 중국을 자극하는 조치를 잇따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얼마나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지는 미지수다. 류제이 유엔주재 중국대사는 CBS와 인터뷰에서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을 위해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대화로 복귀해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는 중국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해야 대화에 나선다’는 원칙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4일 첫 ICBM 발사 후 미국이 처음 대북 제재안 초안을 제시한 이후 20일이 넘도록 미·중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안보리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