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악가들이 세계 오페라계에서 맹활약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종합예술인 오페라에서 성악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즉 연출 지휘 무대 의상 등에서 활약하는 아티스트를 찾기란 쉽지 않다. 7월 대만과 오스트리아에서 한국 출신 신인 의상 디자이너와 지휘자의 활약상이 들려오고 있어 주목된다. 그 주인공은 의상 디자이너 김동환과 지휘자 이범석. 둘 다 한국에선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 오페라계에서 권위있는 거장을 스승으로 두 아티스트는 스승의 적극적인 후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대만국립극장 제작 오페라 ‘일 트리티코’의 무대의상 디자이너 김동환
김동환(37)은 지난 18~23일 대만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오페라 ‘일 트리티코’의 의상을 담당했다. 한국 출신 무대의상 디자이너가 국제 무대에서 오페라 프로덕션의 스태프로 참여한 사례가 거의 없었던 만큼 관심이 쏠린다. 이 작품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초청을 받아 오는 10월 26~28일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도 공연된다. 그리고 2018년 미국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무대미술과 재학 중 독일로 떠난 그는 베를린예술대학의 플로란스 폰 게아칸 밑에서 무대의상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게아칸은 빈 슈타츠오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 세계적인 오페라극장과 축제의 단골 무대의상 디자이너다.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다니엘 슈미트와 위르겐 플림 그리고 무대미술과 에리히 본더 등이 게아칸과 종종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이다.
김동환은 게아칸 밑에서 인턴, 조수를 거쳐 최근엔 공동 디자이너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대형 오페라의 의상을 단독으로 맡은 것은 이번 ‘일 트리티코’가 처음이다. 김동환은 “디자이너로서 무대와 의상 가운데 인간에 좀더 밀착된 느낌을 주는 의상에 끌렸다. 공간보다 인물을 다루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2015년 튀링겐의 크리스투스-파빌리옹에서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와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위한 무대와 의상을 작업하는 등 그는 단독 디자이너로도 조금씩 입지를 넓히고 있다.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그는 “유럽에서 의상 디자이너는 연출가를 필두로 한 스태프 팀의 멤버로 함께 움직인다. 나 혼자였다면 기회를 잡기 힘들었을텐데 게아칸 선생님 덕분에 좋은 프로덕션에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에를 티롤 여름축제 개막식과 오페라 ‘마술피리’ 지휘자 이범석
이범석(38)은 오스트리아 티롤주의 소도시 에를에서 지난 6일 개막해 30일까지 열리는 에를 티롤 여름 축제에서 두 차례 지휘봉을 잡았다. 지난 6일 개막식과 22일 오페라 ‘마술피리’다. 매년 여름 유럽 곳곳에서 열리는 음악축제에 한국 성악가들이 출연하고 있지만 지휘자로는 정명훈, 김은선을 빼면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페스티벌 전속 부지휘자인 이범석의 활약은 이채롭다.
에를 티롤 여름 축제는 오스트리아 출신 지휘자 겸 연출가 구스타브 쿤(72)이 에를의 예수 수난극 극장이 바그너의 오페라에 적합한 음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착안해 지난 1997년 설립됐다. 카랴안을 사사한 구스타브 쿤은 오페라 분야에서 권위있는 지휘자로 1986년부터 오페라 연출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일 본 오페라극장, 이탈리아 나폴리 산카를로 오페라극장, 이탈리아 마체라타 페스티벌 등의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1987년부터 독일의 ‘새로운 목소리(Neue Stimmen)' 국제콩쿠르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그는 1992년부터 이탈리아 루카에 아카데미를 만들어 성악가, 지휘자, 오페라 코치를 양성하고 있다.
이범석은 독일 카셀 음대와 오스트리아 그라츠 음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유럽의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지휘했다. 그리고 2015년 쿤의 루카 아카데미에서 참가했다가 에를 티롤 축제 전속 부지휘자로 발탁됐다. 보통 성악가 지휘자 반주자 등은 축제 시즌에만 상주하지만 이범석은 전속 부지휘자로서 쿤을 보좌하고 있다.
지난해 축제 기간 각종 리허설을 이끈 것은 물론 오페라 ‘마술피리’를 지휘한 이범석은 올해 쿤을 포함해 5명의 지휘자가 5곡을 각각 연주한 개막공연에 참가했다. 특히 쿤의 권유로 직접 작곡한 작품을 선보였다. 또한 지난 22일 ‘마술피리’를 다시 지휘했다.
이범석은 “쿤 선생님과의 만남은 내 음악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나를 위해 축제 전속 부지휘자 자리를 만들어 주셨을 정도다”며 “축제에서 일하면서 오페라와 관련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