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28일 ‘화성 14형’ 2차 시험발사 직후 “미국의 전쟁나발이나 극단적인 제재위협은 우리를 더욱 각성시키고 핵무기 보유명분만 더해주고 있다”면서 “국가방위를 위한 전쟁억제력은 필수불가결의 전략적 선택이며 그 무엇으로도 되돌려 세울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전략자산”이라고 말했다.
어느 때보다 강경한 발언이었다. 그동안 핵·미사일 도발 이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내놓은 메시지 가운데 가장 수위가 높았다. 'ICBM급' 미사일 실험에 성공한 지난 4일만 해도 김 위원장의 발언에는 '협상'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당시 그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탁자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청산이란 '조건'만 맞으면 미국과 협상을 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였다. "핵과 탄도로켓을 결코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겠다"는 말로 미국을 향해 사실상 협상을 요구한 그였는데, 이번에는 그런 뉘앙스가 담긴 발언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화성 14형 1차 발사 이후에도 미국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자 한층 더 강경한 전략을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 발언에서 사라진 또 하나의 단어는 '남조선'이었다. 한국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미국의 전쟁나발' '미국의 극단적 제재위협' 등 오로지 미국을 향해서만 말을 했다. 북한이 ICBM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은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체제 인정과 핵보유국 지위를 얻어내기 위해서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 것이다.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과 북·미 관계 정상화, 주한미군 철수 등을 관철시켜 체제 위협을 완전히 해소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이렇게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일차적으로 대미(對美) 위협이지만 남북관계에도 함의가 적지 않다. ‘북한을 압박하되 대화의 문은 열어두겠다’는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면 거부한 셈이 됐다. 김 위원장은 우리 정부가 남북 군사당국회담 일자로 제안한 지난 27일 화성 14형 2차 시험발사 명령서에 서명했다. 처음부터 우리의 회담 제안에 응할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다.
북한은 앞으로도 남북관계는 고려하지 않고 핵·미사일 고도화에만 열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은 다음달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빌미로 노골적인 대남 비난을 쏟아낼 가능성이 크다. 6차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30일 “북측은 핵보유국이라는 전략적 지위에 맞게 자신들을 대우하라고 우리 측에 요구하고 있지만 이를 들어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 측은 이산가족 상봉 등 쉬운 것부터 접근하자는 입장인데 반해 북한은 근본적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의외로 남북 경색 국면이 오래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