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기술은 올 들어 빠르게 진화했다. 지난 4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1차 발사실험을 했고, 24일 만에 다시 화성-14형을 쏘아 올렸다. 1차 실험 때는 중거리 미사일을 뜻하는 'IRBM'에 더 가깝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이번엔 ICBM임을 의심하는 진단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사거리가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28일 밤 기습적으로 발사한 화성-14형은 고도 3724.9㎞에 비행거리 998㎞였다. 47분간 날아가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졌다. 갔다. 발사각도와 고도, 비행거리로 추정한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최소 1만㎞에서 최대 1만4000㎞였다. 북한이 지난 4일 발사한 미사일의 추정 사거리는 1만㎞에 미치지 못했다. 이번 미사일은 워싱턴까지 타격하긴 어려워도 미국 본토 대부분의 지역에 대한 타격이 가능한 수준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김정은)께서 이번 시험발사를 통하여 임의의 지역과 장소에서 임의의 시간에 대륙간탄도로케트를 기습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 과시되었으며, 미 본토 전역이 우리의 사정권에 있다는것이 뚜렷이 입증됐다고 말씀하셨다"고 보도했다.
이 정도 사거리를 갖췄다면 ICBM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북한은 지금까지 '대륙간탄도로케트' 실험을 모두 '최대 고각 발사체제'로 진행했다. 1만㎞ 이상 날아갈 수 있는 미사일을 1000㎞만 날아가 동해에 떨어지게 하려고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쏘아 올렸다. 그렇게 발사된 미사일은 대기권을 벗어나 공기가 희박한 성층권에 도달했다가 다시 대기권으로 진입할 때 역시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내려오게 된다.
실전에서 ICBM을 활용하려면 발사각도를 이보다 크게 낮춰야 1만㎞를 날려 보낼 수 있다. 그 경우 대기권을 벗어났다가 다시 진입할 때도 비스듬한 경사각을 이루며 내려올 수밖에 없다. 대기권 '수직 진입'과 '경사 진입'의 환경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사 진입이 훨씬 더 가혹한 환경을 통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대 고각 발사만으로는 경사 진입 환경을 제대로 구현해 실험할 수 없어 온전한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계산상으로는 ICBM급 사거리를 갖고 있지만 실제 전투환경에서 그 기능을 보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북한도 이를 알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9일 화성-14형 발사 소식을 전하며 "최대 사거리를 비롯한 무기체계의 전반적인 기술적 특성들을 최종 확증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번 1차 시험발사에서 확증되였던 발사대리탈특성, 계단분리특성, 구조체계특성 등이 재확증되었으며 능동구간에서 최대사거리 보장을 위하여 늘어난 발동기들의 작업 특성들과 개선된 유도 및 안정화 체계의 정확성과 믿음성이 확증되었다"고 했다.
특히 "실제 최대사거리 비행조건보다 더 가혹한 고각발사체제에서의 재돌입 환경에서도 전투부의 유도 및 자세조종이 정확히 진행되었으며 수천도의 고온조건에서도 전투부의 구조적 안정성이 유지되고 핵탄두폭발조종장치가 정상 동작하였다는것을 확증하였다"고 강조했다.
조선중앙통신이 '최대사거리 비행조건보다 더 가혹한 고각발사체제'라고 말한 것은 '수직 진입' 때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경사 진입보다 더 빠르게 대기권에 들어왔는데도 각종 기능이 유지됐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속도를 견뎠다는 점만으로 안정성이 확보됐다고 보긴 어렵다. 경사 진입 때 미사일 동체에 가해지는 압력과 열은 수직 진입 때와 다른 성질의 환경이어서 단순히 비교할 성질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ICBM 기술 측면에서 향후 북한의 행보는 두 가지로 예상해볼 수 있다. 화성-14형의 사거리를 확대한 것에 만족해 실전배치 단계로 넘어갈지, 미국을 더욱 압박하기 위해 재진입기술을 확실히 보여줄 추가 실험을 할지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한 북극성-2형 개발 때는 두 차례 발사실험에서 성공하자 실전배치로 이행했다. 하지만 재진입 기술에 대한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 추가 발사를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