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규동(평생교육학박사, 강진다산기념관)
나이가 들면서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지난해 회갑을 맞아 친구들과 강진에 왔다가 다산초당에서 다산의 저술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인생3막은 또 다른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정표가 계기가 되어 강진군 다산기념관 교육훈련원 교육담당관으로 어쩌다 공무원이 되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공무원으로 일하게 되었으니 정말로 운좋은 케이스가 되었다.
그것은 바로 역사의 현장에서 다산선생의 위대한 업적에 놀라고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의 현장은 보존되고 가꾸어져 길을 닦는 것보다 역사의 길을 닦는 것이 이제는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으로 찾은 곳이 나주 율정삼거리였다. 그곳은 1801년 다산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가 헤어지기 전 마지막 밤을 지샌 곳이다. 꼭 한번 찾고 싶었던 곳으로 고향에 다녀오는 길에 일부러 그곳으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을 찍어봐도 나오지 않고 율정길이 나와 그 길을 가 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나주동신대 부근을 이리저리 가 보았지만 율정 삼거리는 보이지 않고 도로확장 공사가 분주히 진행되고 있었다.
몇 번을 오가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되돌아 오다가 길가에 사람이 있어 물어보니 알지를 못한다. 조금 후에 나이 먹은 분이 나오시기에 다시 확인해보니 마찬가지다. 도로공사로 그전에 있던 건물과 율정주막 길이 모두 도로에 편입되어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산 정약용과 형 정약전이 눈물로 밤을 지새며 보낸 율정삼거리 주막집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도로확장으로 어지럽게 아스콘만 널려있었다. 역사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그만 도로보다 역사의 길을 내는 노력이 더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왜냐하면 역사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생각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 속에 그리고 사진으로 보았던 율정삼거리는 어른거렸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다. 흔적을 찾으려 이곳 저곳을 둘러보니 증표가 될만한 유일한 것은 아름드리 나무 몆 그루가 서 있었다.
다산형제가 마지막 밤을 지샌 곳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우뚝 서 있었다. 너무나도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으로 차를 돌리는데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이제 무엇보다 역사의 길을 닦는 일이 시급하다.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