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은 불공평한거야.” 어느 병사는 침몰 직전의 배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팀에 속한 병사를 배에서 내몰며 이렇게 말한다. 어린 병사 토미는 선별기준의 불공평함에 항변하지만 막을 도리가 없다.
전쟁은 잔혹하며, 생존을 위한 판단은 이미 선악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그들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최종목표로 한다. 탈주하는 병사들과 달리 역설적으로 탈출작전을 돕는 이들은 죽음도 불사한다. 이들은 민간선박과 영국 조종사, 해군장교다. 특히 개인 소유의 민간선박은 자원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해협을 건너온다.
영화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는 수많은 민간선박이 병사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덩케르크 해변에 도착하는 장면이다.
‘덩케르크’는 익명의 병사 생존기라는 단순한 이야기지만, 영화의 구조와 플롯은 복잡하다. 시공간을 분리해 잔교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이라는 육·해·공의 세 가지 층위에서의 스토리를 교차 편집한다. 이야기의 흐름을 끌어가는 시선도 각 시공간을 대표하는 익명의 연합군 병사, 민간선박을 이끄는 도슨 가족, 공군 조종사로 나뉜다.
여기에 네 번째 시선, 즉 작전을 지휘하는 해군장교 전체를 아우르는 시선을 더했다. 네 시선과 교차 편집은 관객들이 영화를 실감하도록 하는 표현기법이다. 가령 독일전투기와의 공중전투 장면은 아이맥스 카메라를 조종석에 두고 조종사의 시점에서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을 전달한다.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은 영국군이다. 적군 독일군도, 연합군 프랑스군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국 출신 감독으로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덩케르크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고 한다. 때문에 이런 영화구조를 두고 평단의 해석도 다양하다.
당시 작전지 국가였던 프랑스의 평론가들은 탈출작전을 두고 오늘날의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출기’라는 상징적 해석도 내놨다. 하지만 다른 이미지들을 떠올릴 수도 있다. 탈출작전은 오늘날 난민 생존기가 왜 아니겠는가. 병사들의 시체로 뒤덮인 덩케르크 해변은 몇 년 전 생존에 실패한 시리아난민 소년이 주검으로 발견된 터키 해변의 모습이기도 하다.
2017년 키워드 중의 하나가 ‘각자도생’이라고 한다. ‘제각기 자기 살길을 찾는다’는 의미다. ‘살아남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금언처럼 여겨지는 시대다. 하지만 여기에 빠진 것이 있다. 생존을 위한 도정에 진리는 없는 것인가. 생존은 불공평하고 그러므로 각자도생을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 ‘덩케르크’는 누군가의 생존은 살리는 자의 도움과 희생이 있어야 가능함을 보여준다. 살려는 자와 살리는 자가 함께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진 공존의 연대가 절실한 것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