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김기춘이 블랙리스트 정점”…박근혜 재판에 영향 미칠까

입력 2017-07-28 11:13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블랙리스트 범행을 가장 ‘정점’에서 지시하고 독려한 인물”

법원은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블랙리스트)과 관련해 이같이 말하며 김 전 실장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를 받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닌 김 전 실장을 ‘정점’으로 지목한 것이다. 재판부는 오히려 블랙리스트 범행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27일 박근혜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명단을 작성해 정부 지원에서 배제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 전 실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참 나쁜 사람”이라며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을 좌천시킨 부분에 대해서도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직업공무원 제도를 본질적으로 침해한 ‘위법한 행위’였다고 봤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기획과 작성·집행에 있어 박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근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총괄했다고 보고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가 문체부 보고서 내용을 보고받았을 개연성이 크다”면서도 “증거들을 종합해도 지원배제 범행을 지시하거나 지휘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김종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실행자들을 컨트롤 한 사람이 박 전 대통령이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보다 직접적인 지시·공모관계의 증거가 나온다면 뒤집힐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혐의 부족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정렬 전 창원지법 부장판사(현 법무법인 동안 사무장)도 28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국민 입장에서 김 전 실장에 대한 징역 3년이 낮은 형으로 보일 수 있지만 법률적으로 보면 중형”이라면서 “이는 박 전 대통령을 공범으로 보지 않고 김 전 실장이 주도한 것으로 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이 유죄를 받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범행에 관여한 정황이 곳곳에서 제시됐기 때문이다. 김종덕 전 장관은 2015년 1월 초 박 전 대통령이 “보조금 집행이 잘 돼야 한다. 편향적인 데 지원되면 안 된다”고 말한 데 이어 김상률 전 수석을 통해 “문체부 예술지원 사업 관련 건전콘텐츠를 잘 관리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특검이 향후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블랙리스트 작성 및 활용’ 범행의 공모관계를 입증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이는 어디까지나 김기춘 등이 피고인인 사건이므로 박 전 대통령과의 공범 관계는 판결의 주된 쟁점이 아니었다”며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공범으로 인정되지 않은 부분에서 증거를 보강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