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주요 기업인들이 새 정부 출범 이후 27일 처음 마주 앉는다. 27, 28일 이틀간 열리는 기업인 간담회는 각각 오후 6시부터 80분간 진행된다. 이것은 ‘예정’이다. 발표 자료도, 발언 순서도, 사전에 정해진 주제도 없다. 자유롭게 대화하자는 문 대통령의 제안에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없었던 ‘테이블’이 마련됐다. 어떤 얘기가 오갈까.
대통령과 기업인들은 맥주로 시작한다. 27일에 8개 기업, 28일에 7개 기업 대표가 청와대를 찾으면 먼저 상춘재 앞마당에서 ‘호프타임’을 갖는다. 맥주잔을 부딪치며 20여분 환담한 뒤 실내로 옮겨 대화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호프타임이 길어질 수도, 실내 대화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길 수도 있다. 청와대는 그런 상황을 예상해 준비하고 있다.
기업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초청하자는 것도 문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 식탁에 도열하듯 줄지어 앉아 의례적인 발언을 주고받는 대신 밀도 있는 대화가 가능하도록 테이블을 줄이자는 취지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간담회는 변수가 너무 많다. 의외의 주제가 나올 수도 있고,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갈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대표 기업인들이 만난 자리에서 나올 만한 ‘뜻밖의 주제’는 어떤 게 있을까. 이런 간담회는 과거에도 정부가 새로 출범할 때마다 마련되곤 했다. 주로 대기업 총수들이 ‘투자’라는 선물보따리를 풀어놓는 자리였다. 역대 정부는 모두 경제 살리기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고, 그럴 돈은 늘 대기업에 쏠려 있었다. 정부가 출범 초기 강력한 힘을 이용해 대기업의 ‘팔목 비트는 자리’란 평가도 나오곤 했다.
청와대는 이번 간담회에서 ‘일자리’ 얘기에 비중을 두려는 듯하다. 중견기업 오뚜기가 일자리 창출 우수 기업이란 평가에 힘입어 깜짝 초청됐다. 그것도 첫날 참석한다. 오뚜기는 비정규직 직원이 거의 없는 기업이다. 오뚜기를 초청한 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괜찮은 일자리의 확충을 추진하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간담회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상생 과제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홍장표 경제수석은 2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 정부의 경제철학 그리고 새 정부의 기본적인 정책 방향을 서로 공유하고, 일자리 창출과 상생 협력 등에 대해 기업들과 진솔하게 토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정부에서 이렇게 청와대를 찾은 기업인들은 투자 계획, 사회공헌 계획 등을 발표하며 동시에 애로를 털어놓곤 했다. 주로 기업 운영에 장애가 되는 ‘규제’를 풀어 달라는 얘기가 많았다. 이번에도 기업마다 가장 필요한 한두 가지를 테이블에 꺼내 놓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간담회가 잡히면 각 기업은 브레인을 총동원해 청와대에 가서 할 발언을 준비한다.
‘경제 현안’을 소재로 한 대통령과 기업인의 대화에서 주목해볼 한 가지는 과연 ‘증세론’이
거론되느냐다. 문재인정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178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이를 마련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했으며, 문 대통령은 ‘초대기업, 초고소득자’로 증세 대상을 한정했다. ‘슈퍼리치 증세’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청와대를 찾은 기업인은 모두 증세 대상인 대한민국 슈퍼리치들이다.
슈퍼리치 증세에 대한 국민 여론은 이미 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 70% 이상이 찬성했다. 하지만 그 대상인 슈퍼리치의 목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그들이 이런 증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늠해볼 방법은 슈퍼리치를 지지층에 넣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반대 논리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뿐이었다. 이런 때에 마침 ‘슈퍼리치 증세’를 선언한 대통령과 그 세금을 내게 될 수 있는 슈퍼리치들이 테이블에 마주 앉은 것이다.
만약 이 자리에서 2011년 미국의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에 했던 것처럼 “나는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발언이 나온다면, 6년 전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버핏세’ 도입에 찬성하며 말했던 것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언급하는 기업인이 있다면 아마 가장 놀라운 ‘뜻밖의 발언’이 될 듯하다.
간담회에는 정부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청와대 참모진 등이 참석한다. 27일 초대된 기업인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손경식 CJ 회장,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다.
둘째날인 28일에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허창수 GS 회장,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 황창규 KT 회장,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참석할 예정이다. 박용만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를 대표해 이틀 연속 자리를 함께 한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