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27일 오후 2시10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박근혜정부 인사 7명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 진행한다. 이번 선고공판은 박근혜 전 대통령 최측근인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의 유무죄 또는 형량이 처음으로 결정되는 만큼 앞으로 열릴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朴 최측근 첫 선고공판… 관건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출판‧영화‧연극‧가요‧방송 등 문화계에서 활동하는 인사‧단체를 박근혜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당시 야당에 대한 지지 여부로 구분해 목록화한 문건이다. A4 용지 100장 분량에 9473명의 이름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 피고인 측 변호인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 2월 첫 공판준비기일부터 5개월 동안 36차례 공판에서 이 문건의 성격을 놓고 대립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은 ‘정책’을 주장하는 반면, 특검은 ‘차별’을 강조하고 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의 경우 모르쇠로 일관하며 혐의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특검은 지난 3일 결심 공판에서 김 전 실장에게 징역 7년, 조 전 장관에게 징역 6년을 각각 구형했다. 이번 선고공판의 관건은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이 블랙리스트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했는지, 개입한 사실이 입증되도 범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다.
‘모르쇠’ 일관하는 김기춘‧조윤선의 주장
김 전 실장 측 변호인은 블랙리스트를 ‘국가보조금 지급을 위한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3일 최후변론에서 “민간단체보조금 태스크포스(TF)가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실태를 조사했을 뿐 정치세력이나 특정 문화계 인사‧단체를 배제할 목적은 없었다. 대통령이나 청와대 비서실장이 기획해 차별적인 지원 배제를 지시한 사실은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블랙리스트 작성‧집행에 소극적인 문체부 공무원들에게 사표를 강요한 혐의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원한이나 업무에 대한 불만이 없었고, 사직을 강요할 동기도 없다”고 주장했다.
조 전 장관 측 변호인은 ‘블랙리스트에 대한 보고조차 받은 적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정관주 전 문체부 제1차관이 특검 수사에서 ‘명단에 대한 검토 업무가 있다는 사실을 정무수석에게 보고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못해 후회한다’고 진술한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혐의를 부인하는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조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공모의 성립은 눈치를 채거나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것만으로 부족하다. 업무를 지휘감독하는 관계에서 지시하거나 보고받는 행위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직권남용죄 적용될까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는 이번 선고공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사안 중 하나다. 문화계 인사‧단체를 차별할 목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집행한 사실 인정돼도 이 죄목에 대한 적용은 쉽지 않다. 직권남용죄는 무죄 선고율이 높은 죄목 중 하나다.
직권남용죄는 공직자가 누군가에게 의무에 없는 일을 하도록 지시·강요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할 때 성립한다. 형법 제123조에 명시돼 있다. 문제는 ‘정당한 사유’만 있어도 직권을 남용한 사실을 증명하기 여럽게 만드는 모호성에 있다. ‘국가보조금 지급을 위한 정책’을 강조하는 김 전 실장, 시종일관 ‘보고받은 적이 없다’는 조 전 장관의 주장을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할지에 따라 선고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특검의 판단은 뚜렷하다. 특검은 결심공판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집행에 대해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장 등 통치행위상 상정할 수 있는 국가 최고 권력을 남용한 것”이라며 “소극적인 공무원들을 좌천시키는 등 졸렬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합헌적 절차를 모두 생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 전원에게 실형을 구형했다.
특검은 김 전 실장, 조 전 차관 외에도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에게 모두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또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게 징역 6년, 김소영 전 문화체육비서관에게 징역 3년이 각각 구형됐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