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고] 배트맨이 한국 검찰총장에게 “당신은 우리의 희망, 악당이 되지 않기를”
김면기(35) 뉴욕 주 변호사
몇 해 전 인기리에 상영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다크나이트’를 통해서 바람직한 검사의 모습을 떠올려 보고자 한다. 암울했던 고담 시에 ‘하비덴트’라는 신임 검사가 발령받아 오게 된다. 고든 경찰국장과 배트맨은 신임 검사가 온갖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범인들을 기소하고 유죄를 받아낼 것이라고 신뢰했다. 하지만 신임 검사는 범죄자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평정심을 잃고, 점차 신경질적으로 변해간다. 점점 미쳐가는 하비덴트 검사는, 급기야 범인을 직접 체포해서 권총을 들이대며 심문하기까지 한다. 이 때, 배트맨은 하비덴트 검사를 가로막으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이 도시의 희망이야. 이 장면을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모든 게 허사가 돼!”
이러한 영화 속 장면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사법부에 준하는 역할을 하는 검사와는 어울리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의 검사는 영화속의 하비덴트 검사에 가깝다. 피의자를 직접 마주하고, 강도 높은 조사를 통해, 자백을 받아내는 검사의 모습이 익숙하다. 영화 ‘공공의 적2’에서는, 강철중 검사가 조폭들에게 권총을 쏘며 등장하기까지 한다.
과연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소위 선진국에서 이러한 검사의 모습은 발견하기 어렵다. 영국의 검사는 경찰의 수사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미국은 각 주마다 검사의 역할에 차이가 있지만, FBI나 관할 경찰을 제쳐두고, 직접적으로 수사에 관여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프랑스나 독일의 검사도, 피의자를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등의 활동은 전적으로 경찰에 의지한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유사하다. 즉, 어느 곳에서나, 검사는 직접 피의자를 상대하는 대신, 경찰의 수사 결과를 점검하고, 법정에서 피의자를 유죄를 입증하는 것이 주된 업무이다. 이렇듯 서로의 전문 영역이 명확하기 때문에, 양 기관의 협조체제는 매우 긴밀하다. 얼마나 끈끈했는지, 미국에서는 남자 수사관과 여자 검사 부부가 심심치 않게 탄생할 정도이다. 수사에 매력을 느낀 검사가 경찰로 넘어와 수사관이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처럼 상호 존중하며 활발하게 교류하는 모습이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의자를 상대하며 압도하는 검사의 모습이 오히려 익숙한, 우리나라의 현실은 애석하다. 스스로 절제하면서, 독립적으로 정의를 실현해야 할 검사가, 직접 총을 들면 불행한 일이 반복된다. 지난 10년간 검찰 조사를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민이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지난해 온 국민을 슬픔과 분노에 젖게 했던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도 검찰이 있었다. 역설적이지만, 검사로서의 정의의 실현 및 거악의 척결은, 그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을 때, 존경과 박수를 받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지난 24일,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의 문무일 총장의 발언은 상당히 아쉽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이미 다크나이트 영화 속의 하비덴트 검사가 초래하는 비극을 인식하고, 수사-기소 분리를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무일 총장은 수사 없는 기소는 불가능하다며, 여전히 하비덴트 검사로 남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문무일 총장께 부탁드린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게 조심하라”라는 니체의 말을 떠올리며, 검찰에게 제 자리를 찾아주기 바란다.
김면기(35) 뉴욕 주 변호사
뉴욕 주 변호사
미국 위스콘신 주 데인 카운티 법원 인턴 (형사 재판부)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학교 로스쿨 법학박사 (S.J.D.)
경찰대학 법학과
현) 서울 송파경찰서
전) 서울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
청년들의 의견을 듣는 ‘청년기고’ 코너는 다양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는 코너입니다. “청년의,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셋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는 모든 기고는 수정 없이 게재하며 국민일보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청년기고 참여를 원하시는 분께선 200자 원고지 6매 이상의 기고문을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에게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청년기고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thcolu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