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성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다수 사상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임직원들이 항소심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피해자와 배상 및 합의 등이 이뤄진 상황을 고려해 1심보다 형이 줄었다.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영진)는 26일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하면서 흡입독성 실험 등 안전성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인명 피해를 낸 혐의(업무상과실치사 등)로 기소된 신현우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옥시 연구소장을 지낸 김모씨와 조모씨에게는 각각 징역 6년, 5년이 선고했고, 선임연구원 최모씨에게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존 리 전 대표의 주의의무 위반 혐의에 대해선 검찰의 입증이 부족하다며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했다.
가습기 살균제 '세퓨'를 제조·판매해 사망 14명 등 27명의 피해자를 낸 오모 전 버터플라이이펙트 대표에게도 1심보다 2년을 줄인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옥시 제품을 제조한 한빛화학 대표 정모씨에겐 금고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PHMG 원료 중간 도매상인 CDI 대표 이모씨에겐 1심처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충분한 검증 없이 막연하게 제조·판매한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다”며 “인체에 무해하다거나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등 거짓으로 제품에 표시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품 라벨에 표시된 내용을 신뢰해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하고 사용한 피해자들이 숨지거나 중한 상해를 입는 등 참혹한 결과가 발생했다”며 “신 전 대표 등은 옥시에서 제품 안전성에 관한 최고책임자로서 주의 소홀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일으킨 중대한 결과를 발생시켰으므로 엄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를 받은 피고인들에게 1~2년씩 감형해주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일부 피고인은 살균제를 제작하는 데 초기엔 관여하지 않은 점이 있고, 인체에 유해하다는 생각 없이 가족이나 주위 사람에게 제품을 나눠주기도 했다”며 “일부 피고인은 자신의 딸까지 사망에 이르는 참담한 결과가 일어났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보상에 적극 노력해 현재 공소제기된 피해자 중 92%의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 특별법이 제정돼 다수의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된 상황, 잘못을 뉘우친 정상 등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