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57·사법연수원 18기)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이 26일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사직 인사를 남기고 28년 5개월간 몸담았던 검찰을 떠났다. 문무일(56·18기) 검찰총장이 취임하면서 그간의 관행대로 총장의 동기가 검찰을 떠나는 장면으로 보인다.
이 기획부장은 마지막 글을 남기며 “주경야독으로 어렵게 사법시험에 합격, 1989년 3월 6일 검사 임명장을 받고 서소문에 있던 서울지검 청사로 첫 출근한 것이 엊그제 같다”고 소회했다. 그는 이어 자신을 도와주시고 사랑해준 여러 선후배 및 동료 검사, 수사관, 실무관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 “선배로서 때가 되면 물러나야 하는데 제때 물러나지 않아 저로 인해 승진하지 못한 후배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고도 했다.
이 기획부장은 “지난 28년간 안빈낙도의 심정으로 공직생활을 했다”며 ‘논어’의 수기안인(修己安人·자신을 닦아 남을 편안히 한다)이라는 글이 좌우명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공직자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직에서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국민의 편에서 일하려고 노력했다”고 자신의 공직생활을 되돌아봤다.
그는 지난번 고검장 승진에 탈락했을 때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서 사직을 할 생각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법무부나 검찰이 아닌 법원 소속의 구석진 방에서 검찰교수 몇 명으로부터 재직기념패를 받고 마지막 공직을 끝낼 수 없어 3년 후배가 있던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부임했다”고 했다. 출퇴근에 매일 3시간이 걸렸지만, 즐거운 1년7개월의 생활이었다고 이 기획부장은 돌이켰다.
그는 외국법관 연수 초청모임에서 히말라야 인근의 작은 나라인 부탄의 법관을 만나 인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부탄의 법관에게 국민행복지수가 1위인 이유를 묻자, “국가가 정책적으로 자연개발을 추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는 긍정적이고 욕심을 내지 않는 국민성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 기획부장은 이 일화를 소개한 뒤 “검사님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남과 비교하면서 매사를 일정한 수치로 평가하려는 생각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고 조직 전체를 긴장하게 만드는 폐해를 낳게 된다”고 쓴소리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떠날 수 있어 다행”이라며 “검찰 가족님께도 지금 하시는 일이 국민의 삶과 질에 영향을 미치는 소중하고 보람된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면,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고, 정권이 바뀌자마자 검찰 개혁이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정될 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많다”고 되돌아봤다. 그러면서도 “결국 대한민국에서 분쟁해결 기관으로서 검찰의 존재는 대단한 것이며, 대한민국이 잘 되기 위해서는 검찰이 바로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기 위해서는 검찰 가족들은 국민 앞에 겸손하게 행동해야 하고, 절대 만용을 부려서는 안 된다”며 신독(愼獨·홀로 있을 때도 몸가짐과 언행을 바로 함)의 태도를 되새겼다.
그는 후배들을 향한 마지막 인사의 말미에 용혜원의 ‘허세’라는 시를 덧붙였다. “목소리가 너무 무거우면 더 고독하게 된다/가슴 속에 외마디를 들어보라”는 시였다. 이 기획부장의 글에는 그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검찰 구성원들의 댓글이 달렸다. 앞서 문 총장이 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뒤부터 검찰에서는 고검장급인 박성재(54·17기) 서울고검장, 김희관(54·17기) 법무연수원장, 오세인(52·18기) 광주고검장 등 문 총장의 선배·동기 기수가 차례로 사의를 밝혔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검찰, 국민 앞에 겸손해야… 가슴 속 외마디 들어보라” 이명재 검사장, 마지막 인사
입력 2017-07-26 1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