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여성에겐 성생활 중요성 낮다” 판결에 유럽인권재판소 '제동'

입력 2017-07-26 11:27
사진=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캡처

유럽인권재판소가 "나이 든 여성일수록 삶에서 성생활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취지의 포르투갈 법원 판결에 대해 ‘성차별적 편견에 근거한 부당한 판결’이라고 결론 내렸다.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마리아 모라이스(72·여)라는 이름의 포르투갈 여성은 50세였던 1995년 산부인과 수술을 받다가 의료 과실로 성기 부위에 신경 손상을 입었다. 정상적인 성관계를 할 수 없게 된 모라이스는 병원을 상대로 정신적·육체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10월 1심 법원은 모라이스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 병원 측이 8만 유로(약 1억430만원)를 지불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병원은 항소했고, 2014년 10월 2심 재판부는 보상금 지급액의 3분의 1을 줄이라고 판결했다. 병원 측에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셈이다.

남성 법관 2명과 여성 법관 1명으로 구성된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모라이스 부인은 이미 수술 전부터 통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며 “원고의 연령과 두 자녀의 엄마라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그의 삶에서 성생활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판결이 나오자 포르투갈의 여성단체와 여성 법률가들을 중심으로 ‘성차별적 판결’이라는 반발이 제기됐다. 한 여성 변호사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탈레반’에 빗대 “탈레반적 판결”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모라이스는 포르투갈 고등법원 판결을 거부하고 유럽​​인권재판소에 진정을 제기했다. 진정을 접수한 유럽​​인권재판소는 심리 끝에 "포르투갈 고법의 판결은 여성의 성에 대해 편견을 반영하고 있다”면서 “여성의 사생활과 가정생활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인권재판소는 “이 판결은 두 자녀의 엄마이자 50세인 여성의 성적 욕구는 젊은 여성의 욕구에 비해 중요하지 않다는 가정에 기초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가정은 여성의 성이 근본적으로 육아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는 전통적 관념을 반영한다. 이는 인간으로서 여성의 자아실현에 있어 성(性)의 육체적·정신적 중요성을 무시한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의료 과실로 성기능 손상을 입은 두 포르투갈 남성의 사례도 언급했다. 인권재판소는 “당시 포르투갈 대법원은 정상적인 성생활을 할 수 없게 된 남성이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자아존중감이 훼손됐다는 취지에서 그 피해를 인정해줬다”며 “그 과정에서 남성의 연령과 자녀 유무 등은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포르투갈 정부에 이 여성에게 3250유로(약 423만6000원)의 보상금과 2460유로의 소송비용(약 320만6000원)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