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논쟁서 침묵하는 홍준표, 왜… '슈퍼리치 증세'가 소신?

입력 2017-07-26 09:28

증세 이슈가 공론화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일제히 "증세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논쟁은 시작됐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소요 재원 178조원이 부각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문재인정부도 '증세 없는 복지'를 내거는 것이냐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와 여당은 곧바로 '슈퍼리치 증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초대기업, 초고소득자'로 대상을 규정하며 증세 방침을 기정사실화했다.

야당은 일제히 입을 열었다. 정의당을 제외하곤 부정적이었다. 원내 교섭단체인 야 3당의 생각은 조금씩 다르다. 자유한국당이 "세금폭탄'이라며 가장 강한 어조로 반대에 나섰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논평에는 미묘한 입장이 반영돼 있었다. 정면으로 반대하기보다 실효성 문제를 앞세우는 모양새다.

이런 논쟁이 일주일째 계속되는 동안 유독 '침묵'을 지킨 건 홍준표 한국당 대표였다. 제1야당의 리더인 그가 가장 민감한 정치 이슈에서, 더구나 한국당의 지지층이 타깃일 수 있는 정책을 놓고 입장을 내놓지 않는 것은 의아하다. 지난 일주일간 그가 했던 발언 중 증세 문제와 연결지을 수 있는 건 "실험정부가 실험정책을 한다"는 것 정도였다. 지금 한국당에서 증세 이슈는 정우택 원내대표가 주도하고 있다. 

홍 대표의 '침묵' 배경을 찾아가다 보면 주목되는 과거 발언이 나온다. 그는 이명박정부 후반인 2011년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 대표였다. 그해 11월 22일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주최한 국가전략포럼에 참석해 강연했다. 이렇게 말했다.

"1년에 8800만원 버는 사람이나 100억원 버는 사람이나 같은 세금을 내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 소득세법은 28년 전 구간을 정했는데 두 경우 세금이 똑같다. 그때는 소득 1분위가 1만명이었지만 지금은 28만명이나 된다." "한나라당 젊은 의원들이 버핏세를 만들자, 소득세율 최고구간을 신설해 부자들이 좀 더 돈을 내게 소득세법을 개정하자 하니까 반발이 심하다. 보수들이, 지도층이, 가진 자들이 빼앗긴다 생각하지 말고 사회를 위해 양보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정두언 등 쇄신파 의원들이 '버핏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었다. 재계 등의 반발로 당 차원에서 추진되지는 않았고, 논란이 일자 이주영 정책위의장 등이 "아이디어 차원"이라며 차단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홍 대표가 버핏세에 찬성하는 입장에 선 거였다.

이틀 뒤에는 당의 공식 회의에서 정책위원회에 "버핏세 도입 검토"를 지시하기도 했다. 11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홍 대표는 "소득세율 최고구간을 신설하는 방안을 정책위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해 달라"며 "연간 8800만원을 버는 사람과 100억원 버는 사람에게 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버핏세'는 미국 부자랭킹 3위(2017년 현재)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2011년 8월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주장한 '부자증세론'을 일컫는다. 버핏 회장은 '슈퍼리치 애지중지, 이제 그만'이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미국 3위 부자인 자신에게 2010년 적용된 세율은 고작 17.4%로 자기 사무실의 어떤 직원보다 낮았다고 공개했다. 그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벌지만 대부분 30~40% 세율로 세금을 냈다는 것이다. 그는 세금을 더 내게 해 달라고 정부와 의회에 촉구했다.

"내 억만장자 친구들과 나는 정부로부터 충분히 오랫동안 보살핌을 받았다. 이제 정부가 희생 분담을 진지하게 이야기할 때가 됐다. 내가 의회에서 재정계획을 총괄하는 12명의 의원 중 한 명이라면 나는 당장 100만 달러 이상 소득을 가진 이들의 세율부터 높일 것이다."

버핏의 주장은 세계 각지에서 반향을 낳았다. 독일에서는 초고소득자 50명으로 구성된 '‘자본 과세를 요구하는 부자들’이란 단체가 등장해 자신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으라고 촉구했다. 화장품기업 로레알을 비롯한 프랑스 16개 기업 대표와 임원들도 부유층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흐름을 읽은 당시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 '한국판 버핏세' 도입안 꺼내 들었고,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가진 자가 더 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던 것이다.

6년 만에 슈퍼리치 증세론이 다시 이슈화된 시점에 홍 대표의 상황은 6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여당 대표에서 야당 대표로 바뀌었고, 6년 전에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증세론이 불거졌지만 지금은 대선이 끝난 뒤에 시작됐다. 상황이 달라졌다고 6년 전 발언을 스스로 뒤집고 반대에 앞장서기가 머쓱해서인지, 슈퍼리치 증세가 '소신'인데 한국당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침묵하는 것인지 현재로선 분명치 않다. 하지만 논의가 심화될수록 그에게 침묵의 공간은 허락되기 어렵다. 제1야당을 이끄는 홍준표 대표가 "가진 자가 더 내야 한다"고 외쳤던 2011년의 주장을 어떻게 소화할지 주목된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