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6년전 "가진 자가 더 내야" 버핏세 찬성… 이번엔?

입력 2017-07-24 10:28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이명박정부 후반부인 2011년 한나라당 대표였다. 11월 22일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주최한 국가전략포럼에 참석해 강연했다.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1년에 8800만원 버는 사람이나 100억원 버는 사람이나 같은 세금을 내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 소득세법은 28년 전 구간을 정했는데 두 경우 세금이 똑같다. 그때는 소득 1분위가 1만명이었지만 지금은 28만명이나 된다."

"한나라당 젊은 의원들이 버핏세를 만들자, 소득세율 최고구간을 신설해 부자들이 좀 더 돈을 내게 소득세법을 개정하자 하니까 반발이 심하다. 보수들이, 지도층이, 가진 자들이 빼앗긴다 생각하지 말고 사회를 위해 양보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 2011년 '노블레스 오블리주' 외쳤던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정두언 등 쇄신파 의원들이 '버핏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었다. 재계 등의 반발로 당 차원에서 추진되지는 않았고, 논란이 일자 이주영 정책위의장 등이 "아이디어 차원"이라며 차단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홍 대표가 버핏세에 찬성하는 입장에 선 거였다.

이틀 뒤에는 당의 공식 회의에서 정책위원회에 "버핏세 도입 검토"를 지시하기도 했다. 11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홍 대표는 "소득세율 최고구간을 신설하는 방안을 정책위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해 달라"며 "연간 8800만원을 버는 사람과 100억원 버는 사람에게 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날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득보다 실이 크고 세수에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힌 터였다. 홍 대표는 "정부 일각에서는 반대하고 있지만 법은 국회에서 만드는 것"이라면서 박 장관의 언급을 일축하고 버핏세 도입 논의를 밀어붙였다.

'버핏세'는 미국 부자랭킹 3위(2017년 현재)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2011년 8월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주장한 '부자증세론'을 일컫는다. 버핏 회장은 이 글에서 '메가 리치(mega-rich)'란 표현을 썼고, 뉴욕타임스는 그의 글을 게재하며 '슈퍼 리치(super-rich)'라고 제목을 달았다. 

'슈퍼리치 애지중지, 이제 그만'이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버핏 회장은 미국 3위 부자인 자신에게 2010년 적용된 세율은 고작 17.4%로 자기 사무실의 어떤 직원보다 낮았다고 공개했다. 그보다 훨씬 적은 돈을 벌지만 대부분 30~40% 세율로 세금을 냈다는 것이다. 그는 세금을 더 내게 해 달라고 정부와 의회에 촉구했다.

"내 억만장자 친구들과 나는 정부로부터 충분히 오랫동안 보살핌을 받았다. 이제 정부가 희생 분담을 진지하게 이야기할 때가 됐다. 내가 의회에서 재정계획을 총괄하는 12명의 의원 중 한 명이라면 나는 당장 100만 달러 이상 소득을 가진 이들의 세율부터 높일 것이다."

버핏의 주장은 세계 각지에서 반향을 낳았다. 독일에서는 초고소득자 50명으로 구성된 '‘자본 과세를 요구하는 부자들’이란 단체가 등장해 자신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으라고 촉구했다. 화장품기업 로레알을 비롯한 프랑스 16개 기업 대표와 임원들도 부유층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흐름을 읽은 당시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 '한국판 버핏세' 도입안 꺼내 들었고,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가진 자가 더 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던 것이다. 


◇ 2017년 다시 시작된 '슈퍼리치 증세' 논의


6년 만에 다시 이슈화된 증세론은 2011년 '버핏세' 논란과 많은 점이 유사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초대기업, 초고소득자'로 증세 대상을 한정했다. '슈퍼리치 증세'란 네이밍이 이뤄졌고, '포률리즘 증세'라는 반박 논리가 등장했다. 이른바 ‘증세 프레임 전쟁’이 시작됐다. 

여권은 기존의 ‘부자 증세’에서 ‘상위 0.08% 슈퍼리치 증세’로 대상을 더 세분화하며 프레임 선점에 돌입했다. 서민과 일반 국민에게 부과하는 세금이 아니라는 점을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타깃 최소화로 정책 지지층을 두텁게 하고, 저항세력은 분산하는 전략이다. 노무현정부의 종합부동산세 도입이 ‘세금폭탄’ 프레임으로 오도된 경험도 반면교사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은 증세 대상 초대기업은 0.019%, 초고소득자는 0.08%라는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했다. 증세에 대한 대다수 국민의 막연한 불안감과 거부감을 사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야권은 문재인정부 증세를 ‘포퓰리즘 증세’로 비판하고 나섰다. 문재인정부가 포퓰리즘적 퍼주기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대기업과 고소득자를 겨냥한 표적 증세를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입장은 엇갈려 있다. 

자유한국당은 “무리한 대선공약 달성을 위해 증세를 추진하고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하려 한다”며 “이런 식의 증세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비판했다. ‘퍼주기 공약’을 먼저 손봐야 한다는 논리다. 한국당은 문재인정부가 과도하게 확대한 복지정책을 정밀 분석해 대응책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증세 논쟁에 뛰어드는 대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국민의당은 “증세를 검토하더라도 재정 운영의 효율성과 우선순위를 종합적으로 살펴 최후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은 “더 가진 사람이 더 내는 구조는 맞지만 어느 일방의 희생만 강요하는 식은 곤란하다”며 중부담·중복지를 향한 사회적 합의를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목소리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24일에도 "실험정부가 실험정책을 계속 하고 있다. 우리(한국당)로선 나쁠 게 없다. 깔보이지 않도록 좀 더 노력하면 된다"는 정도의 말을 했을 뿐이다. 2011년 버핏세에 찬성했던 기억이 남아 선뜻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인지, 슈퍼리치 증세가 자신의 소신과 부합하는데 여권이 들고 나오니 망설이고 있는 것인지 아직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논의가 심화될수록 그에게 침묵의 공간은 허락되기 어렵다. 제1야당을 이끄는 홍준표 대표가 "가진 자가 더 내야 한다"고 외쳤던 2011년의 주장을 어떻게 소화할지 주목된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