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 “연기 호평? 자만할까 두려워” 초심 그대로 [인터뷰]

입력 2017-07-24 10:21 수정 2017-07-24 11:45
배우 동하. 국민일보DB

“작년 이맘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요? 제 헤어스타일이 달라졌어요(웃음). 마음가짐은 똑같아요. 전혀 달라진 게 없어요. 단지 좀 더 행복해졌다는 거? 더 많은 사람들이 제 연기를 봐주셨다는 게 행복하죠. 그거 이외에는 딱히….”

훗날, 배우 동하(본명 김형규·25)에게 2017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9년차 무명의 설움을 떨쳐내고 화려하게 비상했다. 주목받지 못할지언정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마냥 좋았다는 이 청년은 이제 당당히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게 됐다. ‘아, 그 연기 잘하는 배우.’ 그가 늘 꿈꿔왔던 말이다.

드라마 ‘김과장’(KBS2)의 허점투성이 재벌2세 박명석 역으로 눈도장을 찍은 데 이어 ‘수상한 파트너’(SBS)의 소시오패스 연쇄살인마 정현수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떠들썩한 칭찬의 말과 이견 없는 연기 호평이 쏟아진다. 그러나,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동하는 덤덤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기분은 너무 좋은데 그걸 티내고 싶진 않아요. 호평이 너무 많은 나머지 제 자신이 자만할까봐,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제가 정말 잘한다고 우쭐할까봐, 그게 두려워요. 너무 기쁘고 행복하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넘어갈 생각이에요. 여기서 연기를 그만할 게 아니니까요. 다음 작품이 결정되면 또 다시 열심히 해야죠.”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동하는 “일단 정현수를 완전히 잊고 싶다”고 했다. 정현수로 살아 온 지난 세 달이 그만큼 고됐다는 얘기다. 고교시절 집단 성폭행으로 희생된 첫사랑의 복수를 위해 가해자들을 직접 응징해나가는 인물. 그는 “캐릭터의 예민함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피해자 여자아이의 꿈을 실제로 꾸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SBS '수상한 파트너' 극 중 장면들.

“원래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는 편이 아닌데 이번 작품은 좀 심했던 것 같아요. 범죄자 역할을 처음 맡아봐서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려웠죠.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해야 진심으로 연기할 수 있거든요. (인물에 빠진 뒤에는) 촬영 내내 전체적으로 기분이 침체돼 있기도 했어요.”

‘김과장’ 종영 이후 곧바로 ‘수상한 파트너’ 촬영에 들어갔다. 캐릭터 연구 시간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초반에는 좀 힘들었어요. 한 작품을 끝내고 나서 이전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시간과 새 작품에 들어가 다시 캐릭터를 만들고 입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번엔 거의 2~3일밖에 여유가 없었거든요.”

그럼에도 동하는 자신만의 정현수를 탄탄히 그려나갔다. “정현수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소시오패스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목표는 딱 하나였죠. 가해자 7명을 죽이는 것. 그 과정에 방해가 되는 노지욱(지창욱) 은봉희(남지현) 지은혁(최태준) 차유정(나라) 등은 사실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는 거였어요.”

완벽 범죄를 이어가는 인물인 만큼 정리벽과 강박증이 있다는 설정이 덧대어졌다. 집안 물건이 1㎝만 삐뚤어져있어도 0.5초 만에 알아채고 만다. 검찰이 집에 들이닥쳤을 때 신경질적으로 ‘신발 벗고 들어오라’고 쏘아붙이는 디테일은 그의 애드리브로 완성됐다.


동하는 “정리정돈에 미쳐있는 사람 입장에선 자기 집에 모르는 이들이 신발을 신고 들어온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상황상 어울리지 않거나 웃겨 보일지라도 그때 난 ‘신발 벗고 들어오세요 아저씨’라는 대사를 꼭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사실 저 스스로는 10부 전후로 ‘이 정도면 정현수가 되어 있다’고 판단을 했어요. 그때부터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정현수의) 대사가 되는 거였죠. 그래서 격한 감정 변화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어요. (인물에 이미 녹아들었기에) 어떤 장면이든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극이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촬영은 거의 ‘생방송’으로 진행됐다. 쪽대본과 빡빡한 스케줄이 이어졌다. 육체적인 피로가 쌓였으나 그로 인해 연기에 방해를 받진 않았다는 게 동하의 말이다. “힘들어도 카메라만 돌면 잠이 깨더라고요. 그게 참 신기해요. 역시 ‘하고 싶어서 하는 일’과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동하는 스스로 “만족을 잘 하지 못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본인이 찍은 장면이 웬만큼 마음에 들더라도 ‘아니야’를 외치며 부족함을 찾는 편이란다. “왜냐면 자칫 자만하거나 오만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 건 정말 한 순간이거든요.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계속해서 채찍질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연기 호평에 대해서도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내가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겸손해했다. 그는 “저로써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칭찬을 받는다면 진짜 잘해낸 연기자들한테 죄송스러운 일인 것 같다. 어찌됐든 믿어주신 만큼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다. 계속해서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도 이제 제법 생겼다. 동하는 “그분들 덕에 더 힘내서 연기할 수 있는 같다”고 고마워했다. “봐주시는 분이 없으면 사실 (연기하는 것도) 의미가 없잖아요. 의욕도 안 생길 거 같고요.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질수록 감사하고 행복하죠. 모든 분들께 직접 인사드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인기나 유명세 따위에 흔들리지 않도록 그를 지탱해주는 힘, 그건 아마도 연기에 대한 진심과 열정일 테다. “어떤 장르의 작품이든 관계없이 그저 캐릭터를 분석하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는 그이니까.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매 작품과 캐릭터가 소중했죠. 시청률이 낮든 인지도가 없든 늘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았어요. 다음 작품도 지금까지와 똑같은 애정을 갖고 임할 테니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