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겠어요. 다만 그동안 선택의 갈림길에서 안주하기보다 도전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프랑스 마르세이유 국립발레단의 이지영(30)이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을 위해 내한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유학을 떠난 그는 그동안 러시아 독일 네덜란드에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활동했기 때문에 국내에선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2015년 고향인 부산에서 갈라 공연에 참가한 것이 국내 관객과 만난 유일한 무대였다.
20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그는 “어릴 때 외국으로 떠났기 때문에 한국 무대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기회를 잡지 못했는데, 이번에 무용단을 옮기는 과정 중에 기회를 잡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9월부터 독일 비스바덴에 있는 헤센국립극장 발레단으로 옮긴다. 정년이 보장된 정단원으로 있는 마르세이유 국립발레단을 그만두고 헤센국립극장 발레단과 1년 계약을 맺었다. 안무가 에미오 그레코와 피터 숄텐이 공동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마르세이유 국립발레단이 현대무용에 주력한다면 안무가 팀 플레게가 이끄는 헤센국립극장 발레단은 모던발레 위주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그는 지난 6월 헤센국립극장 발레단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는 “종신단원으로 있는 마르세이유 국립발레단을 그만두고 헤센국립극장 발레단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 주변에선 아까워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나보다 간절한 사람이 종신계약의 기회를 가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면서 “굳이 내 아쉬움을 꼽으라면 현대무용의 맛을 이제 알아가는 상황에서 무용단을 옮기는 것이다”고 답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레를 시작한 그는 부산 부니엘 예중 2학년을 다니다 러시아 페름 발레학교로 유학갔다. 당시 서울 선화예중 편입이 결정된 상태였지만 발레 워크숍에서 만난 러시아 교사의 추천으로 유학을 선택했다. 페름 발레학교에서 4년간 바가노바 메소드를 공부한 그는 베를린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존 크랑코 발레학교 발레 아카데미에서 2년간 다시 공부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독일로 건너온 후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발레 메소드가 다른데다 나태했던 탓에 수업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당시 살도 많이 쪘다. 그때 한국의 대학과 같은 수준의 공부는 마치라는 부모님의 충고에 다시 네덜란드 예술대학으로 옮겼다”고 털어놓았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콘서바토리(약칭 코다츠) 3학년에 편입한 그는 4학년 때 네덜란드 인트로단스 무용단에서 연수단원으로 활약했다. 비슷한 시기인 2012년 프랑스 마르세이유 국립발레단 오디션에 합격한 그는 1년간의 계약단원을 거쳐 종신계약을 맺었다. 마르세이유 국립발레단은 초대 예술감독인 롤랑 프티(1972~1998), 마리-클로드 피에트로갈라(1998~2004), 프레데릭 플라망(2004~2014), 에미오 그레코&피터 숄텐(2014~현재)을 거치는 동안 현대무용 전문 무용단으로 바뀌었다.
그는 “나를 뽑은 것은 플라망 감독이지만 현재 그레코 감독과도 재밌게 작업했다. 그레코 감독은 극한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발레 무브먼트나 테크닉에도 관심이 많다”면서 “최근 신작인 ‘모멘툼’의 경우 내가 주역으로 나왔는데, 그레코 감독과 함께 작품을 만든데다 좋은 반응을 얻어서 큰 보람을 느꼈다. 다만 그레코 감독의 안무는 워낙 격렬하다보니 30분 길이인 ‘모멘툼’을 추고 나면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고 웃었다.
마르세이유 국립발레단에 입단하기 전까지 짧지 않은 길을 돌아왔지만 그는 다시 새로운 여정에 나섰다. 헤센국립극장 발레단의 경우 모던발레를 추구하는 만큼 그의 장기를 좀더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는 “모던 발레와 컨템포러리 댄스 둘 다 잘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알렉산더 에크만나 호페쉬 섹터 같은 안무가의 스타일을 좋아한다”면서 “ 헤센국립극장 발레단에서 팀 플레게 감독 외에 여러 안무가와도 작업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드넓은 무용 장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싶다”고 피력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