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가르쳐준 전도법으로 40년목회해보니

입력 2017-07-18 16:13
김의중 인천 작전동교회 목사가 목회 40년을 맞아 감리교 중부연회 및 타 교단 목회자 100여명에게 전도세미나를 하고 있다. 인천=정창교 기자

“21세 때 서울 신촌에서 고향 강화도로 내려온 어느 날 홀어머니가 엉엉 울면서 탕자인 나를 위해 뜨거운 기도를 하는 목소리를 문밖에서 들었어요.”

김의중 목사(71)는 18일 오전 11시쯤 인천 효성중앙교회에서 열린 전도세미나에서 “6.25 당시 아버지와 형을 잃고 방황하다 3대 독자 외아들인 나를 위해 따뜻한 밥을 이불속에 넣어두고 기다리는 어머니를 만났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후 “어머니 계신 곳에 제가 있겠다”고 다짐했다.

김 목사는 “부모를 떠나서 청년 김의중처럼 방황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전도한 결과 1000여명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었다”며 “나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를 만난 뒤 100세까지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104세까지 사셨다”고 회고했다.

김 목사는 예수님의 전도 정신은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김 목사는 “교회 자판기 앞에 서 있는 정신장애인 김경옥을 전도한 일을 잊을 수 없다”며 “그녀를 전도한뒤 좋은 자리를 줬더니, 모든 공예배에 나와 열심히 예배를 드렸다”고 기억했다.

김 목사는 외국에서 들어온 전도지가 아닌 순수 국내산 전도지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기독교감리회에서 최초의 전도지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돌아온 탕자’가 김목사의 작품이다.
김목사가 20년전 15년의 연구끝에 완성한 '돌아온 탕자'의 원본 그림이 18일 인천 효성중앙교회 1층에 전시돼 있다. 세상에서 방탕하게 살던 탕자가 죽음을 기다리면서 자신을 사랑해준 아버지 집을 떠올리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탕자는 바로 '나'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인천=정창교 기자

 

 김 목사는 30세에 부평공단에서 노동자 목회를 시작한 인물로 현장을 떠나지 않고 40년 목회를 해왔다. 내년에 은퇴를 앞둔 김 목사는 이 전도지가 유치원생인 손자를 통해 전도용으로 사용된 사례를 소개해 청중들을 울리고 웃겼다.

손자가 전도지를 보고 “애는 누구야”라고 묻고는 “죽으려고 그러는거지”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김 목사는 “영등포중앙교회를 섬기는 4대 독자 아들 목사를 통해 이 전도지가 가정회복에도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 ‘내 친구 하준이가 기다린다’는 이유로 놀이동산을 가지 않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을 따라 교회에 처음 나온 부부가 11시 예배에 출석한 것을 보면서 전도지의 효과에 다시 한번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날 참여한 목회자들에게 전달할 전도지를 감리사들을 통해 추첨해 전달하기도 했다.

앞서 이 교회 정연수 목사는 “교단 직책을 맡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부터 존경하는 분이 김의중 목사”라며 “효성중앙교회는 사회적인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연수 효성중앙교회 담임목사 겸 중부연회 인천북지방 감리사가 18일 전도세미나에서 "전도는 종합예술"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인천=정창교 기자

정 목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며 “누가 전달해 주느냐가 중요한만큼 이미지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자존감에 상처를 주고 크리스천이라는 자부심에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손배배상을 청구하면 천문학적인 액수가 나올 것”이라며 “전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위해서는 수질관리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의중 목사가 저작권을 갖고 있는 국산 전도지 ‘돌아온 아들이야기’는 미국 중국 베트남 필리핀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목사는 “그날이 오기전에 거기서 죽지말고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음성이 담긴 메시지가 대학의 기독교동아리에서도 만들어졌다”고 귀띔했다.

김 목사는 “최근 자살을 결심한 여대생에게 몹쓸짓을 해 결국 목숨을 끊게한 사건을 보면서 참담한 심정이었다”며 “‘돌아온 아들이야기’ 전도지가 후배 목회자들에 의해 잘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