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고]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아홉 글자의 삭제가 검찰개혁의 시작

입력 2017-07-17 13:49 수정 2017-07-17 13:51
지난 13일, 국회에서 박상기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박상기 후보자는 저명한 형법학자로서 연구 활동과 후학 양성에 헌신하고, 동시에 시민운동가로서 검찰과 사법제도 개혁을 위해 활동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실천해 왔던 인물이다. 그에 대한 인사청문회 역시 남달랐다. 국회의원들이 쏟아내는 추상같은 질의들을 의연하게 받아내며 흔들림 없는 개혁 의지를 천명하는 그의 모습에, 오랜만에 깊이 안도하며 밝은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청년기고]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아홉 글자의 삭제가 검찰개혁의 시작이다.
손병호 법무법인(유) 현 파트너변호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에 관한 후보자의 입장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상기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조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대로 추진하겠다고 하면서도, “수사권을 가진 다른 수사기관의 영장청구가 가능해짐으로써 국민에 대한 체포‧구속, 압수‧수색이 남발돼 인권보장에 역행할 우려가 있으므로 헌법 규정을 개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모처럼 걸출한 인물의 출사를 지켜보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실로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12조(신체의 자유), 제16조(주거의 자유)에 영장주의를 규정하면서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도록 하여, 영장을 신청할 수 있는 주체를 오직 검사로 한정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 조항은, 5‧16 군사정변으로 들어선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국회의 동의도 없이 1961년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처음 도입하였고, 그 후 제3공화국 헌법에 등장하여 오늘날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다.

그런데 비대해진 검찰 권력과 그로 인해 발생한 무수한 폐단이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이 아홉 글자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은 검사의 영장 신청이 없으면 법관의 판단을 받을 수조차 없다보니 검사의 자의적 결정에 따라 수사가 무력화되기 쉽다. 영장주의의 본질은 수사기관이 강제처분을 함에 있어서 ‘중립적인 법관이 구체적 판단을 거쳐 발부한 영장’에 의하여야 한다는 것이지, 영장청구의 주체가 오로지 검사여야만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럼에도 검사에게 독점되어 있는 영장청구권은 ‘영장주의의 관철을 위한 이중적 보호장치’라는 미명 아래 경찰 수사에 대한 부당한 개입과 수사지휘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오・남용되어 왔다.

더 큰 문제는, 독점적 영장청구권이 검찰의 수사권, 기소권과 합쳐져 인권보호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남용될 소지가 크다는 점에 있다. 혹자는 ‘검찰 영장기각 사건’이야말로 소위 전관들의 먹잇감이라고 하면서 여기서 사법불신이 강화된다고 한탄한다. 검사의 제식구 감싸기식 영장기각에 대해서도 어떠한 불복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그들만의 리그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첫 번째로 꼽는 개혁과제는 검찰의 권한 남용에 대한 견제이고, 그 시작은 헌법 제12조와 제16조에서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아홉 글자를 삭제하는 것이다. 과거 18대 국회의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헌법에서 이 아홉 글자를 삭제하자는 안을 제시하였다.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도 경찰에 영장청구권을 부여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하였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후보자 시절 수사권 조정의 일환으로 개헌을 통해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폐지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상기 후보자가 아홉 글자 삭제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이면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차분하고 내실있는 검찰개혁을 준비하는 법무부의 수장으로서, 안정감을 보이기 위한 답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아홉 글자 삭제 이후 경찰의 영장청구권 남용 우려를 어떻게 차단할지에 대한 제도적 대안 없이 무작정 공언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사권을 행사하는 기관 간에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검찰이 보유한 독점적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은 시대적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필자는 새 정부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상기 후보자에게 바란다. 검찰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목소리는 거세고, 그 방향은 분명하다.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조항을 폐지하는 것은 검찰개혁의 시작이고, 수사기관 간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작동시키는 출발점이다. 아홉 글자 삭제에 대한 후보자의 조심스러운 입장에 많은 국민들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도입 과정에서부터 진지한 국민적 논의를 거치지 않았던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이 오・남용되어 국민의 사법불신을 가중시켰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밝힐 때다. 박상기 후보자가 지명 직후 천명하였던 검찰개혁을 완수하고, 정의로운 사법제도의 정착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손병호(36)
법무법인(유) 현 파트너변호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법학전문석사)
서울대 국제대학원 졸업(국제학석사)
경찰대 법학과 졸업(법학사)
전) 동작경찰서 수사관
전)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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