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의 명준 씨/ 이제 막 서른세 살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네요/ 이제 막 서른세 번째의 서류 탈락을 통보받고/ 반지하 방 창가에서 해도 들지 않는 땅 위를 바라보며/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지요/ 명준씨가 취업을 결심한 후에도/ 아내는 여전히 대형 할인매장 비정규직 계산원으로/ 밤에는 초등학교 아이들 산수 과외로/ 사냥터를 야수처럼 누비고 있어요/ …/ 긍정의 끄트머리에 먼지만 풀풀 날리며 있네요”(이용호 ‘그의 하루에 대한 명상’ 중)
‘그의 하루에 대한 명상’의 가장은 동양철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취업을 꿈꾸지만 뜻대로 안 되는 힘든 환경에 있다. 가장의 하루는 대학교 시간강사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을 날카로우면서도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들을 담은 시집이 최근 출간됐다. “살아 있음이 곧 고통인 사람들에게 혁명을 대신하여 이 시집을 바친다”라고 책을 내며 밝힌 이용호 시인은 시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그의 시선으로 재조명했다. 또 그의 염원인 “세상 한 자락을 따스하게 비출 수 있는 시집이 되었으면 좋겠다”처럼 환한 작품들이 담긴 시집이다.
“희망 반점 간파 위에서 때늦은 식사를 한다/ 희망이라는 건 단지/ 다친 가슴에 반창고를 살짝 얹어놓는 것이다// …/ 저녁이 세들 듯 물들어간다”(이용호 ‘저녁 고시원’ 중)
‘저녁 고시원’에서는 차가운 고시원에서 삶을 사는 사람뿐 아니라 힘든 일상 속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시인은 표현한다.
“한때는 내 안에서 타오르던 불꽃이었네 그대는/ 항상 입 밖에서만 맴돌던/ 그대에게 향했던 생각들도/ 한 이랑의 나뭇잎을 흔들며/ 서서히 말라만 갔었네, 이곳에 와본 건 / …/ 내 안에 타오르던 그대의 한 생애도/ 이제는 서서히 식어가야 할 때라는 걸/ 바람의 떨림으로도 알 수 있었네”(이용호 ‘내 안에 타오르던 그대의 한 생애’ 중)
표제작 ‘내 안에 타오르던 그대의 한 생애’에서는 1980, 90년대 뜨거웠던 시절을 넘어 21년 만에 다시 시집을 내며 문단에 돌아온 시인이 완숙미를 가지면서 깨달은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이용호 시인은 동대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우수상), 교단문예상 등을 수상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