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지원했다는 정황이 기록된 메모가 2014년 8월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8월은 이건희 삼성 회장이 쓰러진 지 석 달이 지난 시점으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속도가 붙던 때인 동시에, 9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독대가 있기 약 한 달 전이다. ‘5월 이 회장의 심근경색→8월 삼성 승계 지원 메모작성→9월 독대’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의심될 만한 대목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16일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삼성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전 정부 청와대가 생산한 메모가 2014년 8월에 작성됐다고 추정되는 정황이 있다”며 “자필 메모라 작성시점이 없지만 그때가 맞다는 정황이 있어 특검에 관련 자료를 함께 넘겼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메모와 함께 발견된 문건과 언론 보도, 이메일 내용 등을 종합할 때 메모 작성 시기를 (2014년 8월로) 추정해볼 수 있다”면서도 “메모의 작성자와 작성 시기는 특검이 밝힐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14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박근혜정부 민정수석실에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지원’ 문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문건 가운데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조사’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관련 조항과 찬반입장·언론보도·국민연금 기금 의결권 행사지침 등이 들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지원방안을 검토한 자필 메모도 함께 발견됐다. 청와대는 이 메모에 ‘삼성 경영권승계 국면→기회로 활용’ ‘경영권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삼성의 당면 과제 해결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 등이 쓰여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삼성물산-제익모직 합병 찬성에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대목으로 해석될 수 있다.
2014년 8월은 이 회장이 쓰러진 지 3개월이 된 때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다. 또 특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그해 9월 이 부회장을 처음 독대하면서 승마협회 전담과 선수지원을 권유했다. 그리고 이듬해 7월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뤄졌다. 메모 작성 시점이 2014년 8월이 맞다면 당시 청와대는 이 회장의 심근경색 이후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관여했고, 이는 삼성의 정유라씨 승마지원과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으로 이어졌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2014년 8월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민정비서관으로 재임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우 전 수석은 2014년 5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민정비서관을 하다 이후 민정수석으로 작년 10월까지 재임했다. 청와대가 문건과 메모를 민정비서관실의 사정부문 캐비닛에서 발견했다고 밝힌 점에 미뤄 해당 메모를 우 전 수석이 작성했을 것이란 추측도 제기된다.
우 전 수석이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민정비서관실을 총괄했던 것을 감안하면 당시 삼성을 둘러싼 각종 논의 과정 등을 알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때문에 메모의 실제 작성자와 정확한 작성 시기를 확인하기 위해 우 전 수석 등 관련자들에 대한 추가 검찰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