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삼성 경영권 승계 지원 방안’을 검토하며 작성한 문건을 문재인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캐비닛을 정리하다 발견했다. 검찰과 특검의 국정농단 수사 당시 박근혜정부가 번번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한 이유가 이런 문서들 때문이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문건은 지난 3일 민정수석실 공간을 재배치하던 중 이전 정부에서 민정비서관실과 사정비서관실이 함께 사용했던 공간에서 발견됐다. 총 300종에 이른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박 대변인은 “자료들이 비공개로 지정돼 있지 않아 대통령기록물이 아닌 것으로 판단해 일부 내용을 공개한다”고 말했다.
박근혜정부는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 검찰과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 요구를 번번이 거부했다. 지난해 10월 29일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압수수색을 시도했을 때 청와대는 수사팀이 경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청와대 연풍문에서 검찰이 요구하는 자료를 임의로 제출했다. 2월 3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민정수석실 압수수색을 시도했을 때도 청와대는 특검의 경내 진입을 허가하지 않았다. 특검은 5시간 만에 철수했다.
3월 24일에도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지검장)는 우병우(50)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각종 비위 의혹을 밝히기 위해 민정수석실 산하 사무실 3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으나 청와대 경내 진입은 또 다시 무산됐다. 박근혜정부는 청와대가 군사상·직무상 비밀을 요하는 보안시설인 만큼 법과 관례에 따라 경내 압수수색을 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검찰은 청와대가 자의적으로 제출한 자료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날 청와대 캐비닛에서 발견된 문건은 ‘삼성 경영권 승계’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이 부인하고 있는 혐의를 입증해줄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자료를 검찰과 특검에 내주지 않기 위해 숱한 비난 여론에도 그토록 결사적으로 압수수색을 거부했던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캐비닛에서 발견된 문건들은 박근혜정부 청와대가 ‘정권 차원의 비위 가리기’를 위해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질 듯하다. 문건을 작성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재임기간과 상당 부분 일치해 우 전 수석의 재판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